"유난 떤다고요? 불안에 벌벌 떱니다"... 보복 위협 속 사는 피해자들
연간 400건 넘고 보복살인 사건도 잇따라
스마트워치는 "실효성 없다"며 신청 저조
'스토킹범 재판 전 전자발찌' 등 제도개선도
편집자주
신당역 살인사건 기억하시나요? 범인 전주환이 입사 동기인 피해자를 스토킹하다가 재판을 받자, 피해자의 일터에서 벌인 '보복살인'입니다. 이처럼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등 특정 범죄 피해자는 1차 범죄 이후에도 언제 닥칠지 모를 보복이나 후속 범죄를 더 두려워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곤 합니다. 1년에 400건이 넘게 발생한다는 가해자의 보복범죄. 등 뒤에서 언제 뭔가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의 지옥' 속에 사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가해자가 찾아와 해칠 것 같다는 생각에 입원 중이던 병원 복도로도 못 나갔어요."
(범죄 피해자 A씨)
범죄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오기 어려운 이유는 망가진 몸, 무너진 생계뿐 아니라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탓도 크다. 지나친 망상이나 기우라고? 천만의 말씀. 우리 주변에선 하루 한 건 이상 보복범죄(협박·폭행·살인)가 발생한다.
경찰청 범죄통계 등에 따르면 2010년 보복범죄는 175건이었으나 2020년 298건으로 10년 새 70.3% 늘었고, 2021년 434건, 2022년 421건을 기록했다. 최근 인천에서 30대 남성이 스토킹 신고로 접근금지 조치를 받자, 앙심을 품고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한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509400000641)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511100003328)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401260002277)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402100000550)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20402000003424)
보복범죄 우려는 범죄 신고 자체를 꺼리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2022년 한국형사정책·법무연구원의 설문 결과, 폭력범죄(강도·폭행·성폭력·스토킹 등) 사건 피해자 중 '보복이 두려워' 피해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경우가 10%였다. 실제로 보복범죄의 70%는 수사 초기에 발생한다. 경찰에 체포된 가해자가 석방되거나 불구속 상태로 피의자 조사를 마친 뒤, 무방비 상태인 피해자를 찾아가는 것이다.
"몇 개월간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혼자 못 탔어요. 뒤에서 누군가 걸어올까 무서워 아예 외출을 삼갔죠."
(범죄 피해자의 가족 B씨)
돈 못지않게 절실한 게 신변보호
정부도 보복 두려움에 떠는 피해자들을 돕는 장치를 마련해 두기는 했다. 특정범죄신고자등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 2012년부터 신변보호제도가 운영 중이다. 신변보호조치로는 △보호시설(임시숙소) 제공 △맞춤형 순찰 강화 △스마트워치 지급 △가해자에 대한 서면 경고 조치 등이 있다. 피해자 신청에 따라 사건 담당부서 또는 각 관할경찰서의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심사위원회'에서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 필요성(보복 우려 등)에 대한 심사를 거쳐 조치 여부를 결정한다.
법무부가 2022년 범죄 피해자 지원을 받은 85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필요한 지원서비스'를 묻는 질문에 '신변보호'(13%)가 '경제적 지원'(43.5%) 다음으로 많은 답변을 받았다. 2018년 9,460건이던 신변보호조치 신청은 2022년 2만9,372건으로 급증했다.
"스마트워치 실효성 높여야"
이렇듯 신변보호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피해자들은 현행 시스템에 선뜻 믿음을 주기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가 그렇다. 위급 상황 발생 시 착용자가 버튼을 누르면 112에 자동 신고돼 실시간 위치를 전송하는 장치지만 신청률은 저조하다. 2022년 스마트워치 보급 신청은 1만4,208건으로, 전체 신변보호조치 신청 건수(2만9,372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법무부의 '2023년도 범죄피해자 지원서비스 만족도 조사 및 개선방안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한 피해자는 "신변보호용 스마트워치를 받았지만 가해자를 갑자기 만난 상황에서 사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다가오는 순간에도 관할 경찰서에만 알림이 가기 때문에 정작 피해자는 그 사실을 즉각 알 수가 없다. 스마트워치를 기본 6개월 제공한 뒤 필요시에만 연장토록 한 현행 제도에 대해서도 "재판이 끝날 때까지 제공해줘야 심적 불안을 덜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법무부는 정책기획단 산하 범죄피해자지원제도개선태스크포스(TF)를 주축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제도 개선에 나섰다. 먼저 지난달 12일 스토킹범죄처벌법 개정안 시행에 맞춰 스토킹 가해자에게는 유죄 판결 확정 전이라도 수사 단계부터 최장 9개월간 전자발찌 부착이 가능해졌다. 또 올해 상반기 '양방향 스마트워치'를 도입해 일정 거리(2㎞) 내 스토킹 가해자 접근 시 피해자에게 문자로 알림이 가도록 했다.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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