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설 대목 앞둔 전주 도깨비시장…"인심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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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엔 으레 장이 펼쳐진다.
"시장은 흥정하고 타협해서 거래가 성사되는 곳이니, 사람 사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곳"이라며 "여기서 번 돈으로 명절에 손자들 용돈을 줄 요량"이라는 더덕 상인 이순덕(74)씨 입가의 미소는 벌써 '까치 까치 설날'에 가 있는 듯했다.
이제는 왁자지껄하고 구수한 입담이 오가는 '시장의 추억'이 시나브로 희미해지지만, 상인과 손님들의 발길이 닿는 한 도깨비장터는 여전히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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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모이는 곳엔 으레 장이 펼쳐진다.
상인과 손님들은 그곳에서 필요한 걸 나누고 얻었으며 삶의 기억을 공유한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는 새벽에 열렸다가 동이 트면 사라지길 반복하는 '도깨비시장'이 매일 선다.
설 대목을 앞둔 6일 오전 7시 30분 전주 남부시장 맞은편에 길게 늘어선 도깨비시장이 북적이기 시작한다.
자생적으로 형성된 장터에는 천막들로 빼곡하고 지긋한 연세의 상인들은 이슬비와 찬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입김으로 손을 호호 불며 좌판을 지키고 있다.
부지런한 시민들도 새벽 시장을 가득 메워 열기를 후끈 끌어올린다.
바닥에 튕기며 바짓가랑이를 축축하게 적시는 굵은 빗방울이지만 채소를 팔러 나온 이명자(73)씨는 괘념치 않는 듯했다.
이씨는 명절 대목인데도 손님들이 많이 없다고 인사를 건네니 귀찮을 텐데도 "어제보다 낫다"고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다.
도깨비시장은 전통시장의 일반 점포와 달리 새벽 4시경부터 동이 트고 사람 왕래가 시작되는 아침 9시 전후까지 5시간가량 열린다.
채소와 과일, 생선, 나물, 약초, 민물고기, 두부와 청국장, 참기름, 메주콩 등 없는 것 빼고는 다 판다. 가격도 비교적 싸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점포에서 물건을 진열해 두고 판매하는 일반 시장이 아닌 시골 오일장에 가까워 정겨운 느낌이 가득하다.
한 채소 상인은 마수걸이(첫 장사)도 못 했다고 울상을 짓다가 손님이 오자 '본품'인 배추에다가 미나리를 한 움큼 덤으로 얹으며 금세 환하게 웃는다.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저렴한 듯했다.
오늘 시세로 대파 한 단에 5천원, 꼬막 1㎏에 3천원(최상급 1만원), 더덕 1㎏에 2만원에 팔렸다.
완주와 진안, 무주, 군산 등 거리와 상관없이 사람이 많은 전주로 싱싱한 물건을 가득 싣고 오는 분들도 꽤 많다고 한다.
한 상인은 도깨비시장의 가장 큰 매력을 물었더니 "싼 가격과 싱싱함"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농민과 어민이 직접 기르고 수확한 물건들을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눈을 비비며 새벽길을 나선 덕에 그만큼 싱싱하고 싸다.
이른 새벽 도깨비시장을 가득 채운 이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또 한 푼이라도 더 아끼겠다고 나선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들과 닮았다.
최선을 다하는 그런 생이 차가운 이 새벽 장바닥을 버티게 한 힘이었으리라.
"시장은 흥정하고 타협해서 거래가 성사되는 곳이니, 사람 사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는 곳"이라며 "여기서 번 돈으로 명절에 손자들 용돈을 줄 요량"이라는 더덕 상인 이순덕(74)씨 입가의 미소는 벌써 '까치 까치 설날'에 가 있는 듯했다.
이제는 왁자지껄하고 구수한 입담이 오가는 '시장의 추억'이 시나브로 희미해지지만, 상인과 손님들의 발길이 닿는 한 도깨비장터는 여전히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생각해봐. 다들 도깨비시장에 올 때 뭘 기대하고 오겠어?. 싸고 싱싱한 거 찾는 거 아니겠어? 여기만 한 데도 없어."
모두가 곤한 잠에 빠져있을 새벽에 살짝 출현했다 사라지는 '도깨비들'이 있는 한 도깨비시장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삶의 공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sollens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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