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M스토리] 권력에 대항하는 진실의 용기 - 더 포스트

커뮤니케이션팀 2024. 2. 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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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포스트' (2018)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메릴 스트립, 톰 행크스
▲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지금 당장 취미란에 '영화 감상'이라고 적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더 포스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2017)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해의 화제작이었을 뿐 아니라 이후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대표적 영화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1971년, 지역 신문이었던 워싱턴포스트지(이하 '포스트')가 베트남전과 관련된 정부의 기밀문서를 공개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실화를 다룬다. 당시 포스트가 폭로한 문서에는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등 4대에 이르는 대통령들이 30년간 숨겨온 베트남전에 관한 진실이 들어 있었고, 가족을 전쟁터로 보내야 했던 사람들과 반전주의자들에게 큰 분노와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더 포스트'에는 닉슨 정부가 국가의 치부를 드러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먼저 기사화한 뉴욕타임스를 기소하고 신문 발행을 중지시키는 등 미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횡포를 부리는 상황에서 포스트가 결단을 내리는 과정이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 중심에는 창업주의 손녀이자 포스트의 사장인 '캐서린 그레이엄'(役 메릴 스트립)이 있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더 포스트'는 주로 캐서린과 편집장인 '벤 브래들리'(役 톰 행크스)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벤이 불도저라면 캐서린은 골프 카트 같은 인물로, 영화는 처음부터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성격을 대비시킨다. 영화 초반부, 캐서린은 똑똑하고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드센 이사들 사이에 묻혀 자기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한다. 재정적 위기 상황에 있는 포스트를 주식시장에 내놓기 위한 회의를 마친 후, 사장실까지 남자들의 잰걸음을 뒤따라 오는 캐서린의 모습은 힘에 부쳐 보이기까지 한다. 벤 또한 유한 성격의 캐서린이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기 싫어할 거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그러나 결말부에 그녀는 기업의 결정권자로서 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펜타곤 페이퍼' 사건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강단을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정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포스트의 손을 들어주었고, 언론이 정치적 영향력 아래서 자유로워야 함을 천명했다. 이후 포스트는 유력한 일간지로서 자리 잡았으며, 캐서린은 재임 기간 주주들에게 매년 22%의 수익을 내주는 CEO가 된다. 본래 회사를 물려받았던 사람은 캐서린의 남편이었다는 것, 그런데 그가 우울증으로 자살하면서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던 캐서린이 회사를 맡게 된 것이라는 전사까지 더해지면 포스트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한 편의 극적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시대에 캐서린이 드물게 성공한 여성 기업가라는 점에서 '더 포스트'는 종종 페미니즘 비평의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캐서린의 갈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녀의 집안은 미국 역대 대통령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고, 그들의 파티에 늘 초대되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한 직후, 재클린 케네디를 가까이에서 본 측근 중 한 사람이었다. 정경유착의 폐해, 그중에서도 언론인이 정치인들과 손잡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극들에 대해서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겠으나 어릴 때부터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연스럽게 맺어진 인간관계가 대가성의 거래보다 훨씬 더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캐서린은 거실의 액자 속에서 자신과 함께 웃고 있는 인물들을 고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캐서린의 결단으로 포스트가 위기에 처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뒷받침해주자 전국각지의 언론사들도 '펜타곤 페이퍼'를 대서특필하면서 포스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언론사들의 연대가 영화의 마지막을 더욱 훈훈하게 덥혀준다. 백악관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한 지역 신문 하나가 만들어 낸 귀중한 연대다. 비록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2017)에 작품상과 감독상이 돌아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지만 '더 포스트'에도 자격은 충분했다. 끝으로 영화의 주옥같은 대사들 가운데 '펜타곤 페이퍼' 소송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을 인용해 본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언론을 수호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겨야 한다."

▲ 영화 ‘더 포스트’ 스틸컷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YTN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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