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이 만든 '안재홍=생활연기'라는 공식[TF인터뷰]
"'LTNS'로 또 은퇴설 나올지 몰랐다"
이솜과 세 번째 호흡…"동물적인 연기자"
[더팩트ㅣ문화영 기자] 안재홍의 선택은 늘 파격적이다.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를 넘어 '이번엔 어떤 은퇴작일까' 생각하게 만드는 배우다. 여기에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는 주무기로 사용된다.
지난달 19일 첫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LTNS'(극본·연출 임대형 전고운)는 짠한 현실에 관계마저 소원해진 부부 우진(이솜 분)과 사무엘(안재홍 분)이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들의 뒤를 쫓으며 일어나는 예측 불허 고작극 불륜 추적 활극이다. 'LTNS'는 'Long Time No Sex(롱 타임 노 섹스)'의 약자다. 작품은 총 6부작이며 현재 티빙에 전회차가 공개된 상태다.
배우 안재홍은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LTNS'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에게 '응답하라 1988' 정봉이 '마스크걸' 주오남' 등으로 다양한 캐릭터로 각인됐지만 이날만큼은 사무엘 그 자체였다.
극 중 안재홍이 연기한 사무엘은 택시 운전사이자 우진과 5년 차 부부다. 불같은 우진과 반대로 온순한 성격이며 가정적이다. 섹스리스 부부인 이들은 경제적인 문제에 직면하다 친구의 불륜을 묵인한 대가로 돈을 받는다. 이후 본격적으로 불륜을 추적하고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섹스리스와 불륜이라는 고자극 소재를 사용하기에 19금 대사와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앞서 '마스크걸'에서 오타쿠 주오남으로 '은퇴설·이민설'이 나왔기에 이번 작품 역시 공개 전부터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달 제작발표회에서 'LTNS'는 은퇴작이 아닌 복귀작이라 강조했지만 수위 높은 장면들로 또다시 은퇴설이 돌았다.
"또 은퇴설이 나올지 몰랐어요.(웃음) 사무엘을 접했을 때 생활밀착형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회차를 거듭할수록 장르적인 얼굴을 띄게 돼요. 일상적인 면부터 드라마적인 순간까지 한 인물을 통해 담아내고 싶었어요. '폭넓고 입체적인 인물을 그려야겠다' 했죠. 뒤로 갈수록 약간의 광기이자 낯선 모습을 보이는 게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어요. 설렘부터 광기까지 가져가는 다채로운 캐릭터죠."
'LTNS'의 수위는 꽤 세다. 보는 사람도 깜짝 놀랐는데 처음 대본 받은 안재홍 역시 적지 않게 당황했을 터다. 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보기 드문 장르이자 자칫하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다뤘기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작품은 19금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어디서도 못 봤던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구나' 싶었죠. 어떻게 접하고 생생하게 표현해야 하는지, 작품에 맞는 화법은 무엇일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임대형 감독님과 대학교 때부터 인연이 있는데 여기에 이솜 배우의 조합은 근사했죠."
안재홍은 '안재홍=생활연기'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그는 주위에 있을 법한 인물을 디테일하면서도 자연스레 그리며 캐릭터를 구축했다. 생활연기는 안재홍이 가진 장점이자 사랑받는 비결인 셈이다. 아울러 그는 데뷔 초부터 가진 마음가짐이 '더 진짜 같은 연기'라고 밝혔다.
"어딘가 분명히 존재할 것 같은 사람일수록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더 생생하고 생기 있게 전달할 수 있어요. 더 진짜 같은 연기, 진짜 같은 순간을 담고 싶어요. 생생한 감정을 갖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있어요. 아직 못 해본 장르가 많아 궁극적인 호기심이 있는데 무협 영화를 하고 싶어요."
또 작품마다 '톤앤매너(tone and manner, 어조와 태도)'가 다르다고 강조했다. 가령 '마스크걸'의 장르는 어둡지만 주오남이라는 인물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믿음을 줘야 했다. 장르성이 짙은 이야기에 생생함을 담으려는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흔히 '생활연기'는 '연기하지 않는 듯한 연기'를 뜻하잖아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정말 연기를 하지 않으면 생활 연기로 안 느껴져요. 그럼 시청자들에게 끌림이 없거든요. 연기하는 듯함을 걷어내되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는 게 주안점이에요. 무엇보다 'LTNS'에선 확장성을 담고 싶었어요. 한 인물이 일상에서 범죄로 가는 순간이요."
안재홍은 부부 연기 역시 현실적으로 풀어냈다. 미혼이지만 손잡는 것도 어색하고 키스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섹스리스 부부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결혼'을 연기로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했다.
"부부의 세계는 미지의 영역이에요. 확실히 깊이와 무게감이 다르더라고요. 전 감독님 등 기혼자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느낀 점은 '굉장한 칼싸움'이라는 거예요. (부부의) 말속에 칼이 들어있어요. 경멸하게 공격하지 않더라도 밀도가 높죠."
안재홍과 이솜은 벌써 세 번째 호흡이다. 영화 '소공녀'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이하 '울렁울렁')에 이어 'LTNS'까지 함께했다. 작품에서 이들의 부부 연기가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다. 앞서 이솜은 애정신을 촬영할 때 액션 호흡을 맞추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안재홍 역시 이에 격하게 공감했다.
"'LTNS'는 명백하게 액션 드라마입니다.(웃음) 액션신 찍듯 촬영했고 그보다 더했어요. 오토바이 미행 잠입 수영 등산까지 다양한 액션을 소화해야 했어요. 세 번째 만남이지만 '이제서야 알 것 같다' 할 정도로 신선한 작업이었어요. '소공녀'는 애틋한 연인이라는 단면적인 감정을 짙게 보여줬고 '울렁울렁'에선 헤어짐을 맞이했다면 이번 작품은 설렘부터 경멸까지 다 들어있어요. 서로 액션 리액션을 구분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했죠."
그러면서 이솜을 '동물적인 연기자'라고 칭찬했다. 안재홍은 이솜과 또다시 작품을 하게 된다면 학부형으로 만나고 싶다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역할이요. 그 이야기는 전고운 혹은 임대형 감독님이 했으면 좋겠어요."
어느덧 데뷔 15년 차다. 그를 대표하는 수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안재홍은 가작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영화 '1999, 면회'(감독 김태곤)을 꼽았다. 첫 장편영화이자 주연작인 이 작품을 가장 많이 봤고 벅참이 아직까지 생생하단다.
또 그동안 소화한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밈(meme)' 혹은 패러디로 소비되는 인물들이 많다. 특정 캐릭터로 화제를 얻다 보니 다음 선택에 있어 부담이 될 터. 시청자들 역시 안재홍의 캐릭터 소화에 기대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안재홍은 "(작품 선택에) 고민이 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사무엘을 보며 시청자들이 주오남을 떠올릴 것 같진 않아서요. 인물의 세계관 속에서 생생하게 느껴질 뿐이지 전작에 뭔가 덧붙이는 마음으로 임하진 않거든요. 온전하게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연달아 일어난 작품의 흥행 그리고 스포트라이트가 이젠 일상이 됐다. 그럼에도 연기할 때 '찌릿한 순간'이 늘 있다고 말한 안재홍이다. 앞으로 어떤 '은퇴작'이 나올지 기대되는 순간이다.
"얼마 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말만큼 곧은 마음과 기준이 없을 것 같아요. 이 마음이 동력이 되고 스스로 격려가 돼요. '은퇴하는 거냐' 할 정도로 모든 걸 다 걸고 연기하고 싶어요. 작품이 끝나면 잘 환기해서 다음 작품을 맞이하고 싶고요. 환기할 때 많이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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