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버티고 선 조각… 고된 삶 속 인간의 희망 담았다[세계로 가는 K-조각의 미래]
조각 작품과 그림자의 관계로
수묵화적 산수 풍경 구성하고
스테인리스·야광안료 등 도입
현대와 융합된 조각개념 실천
물질 감각 통해 현실묘사 시도
형식·내용 속 ‘비균형의 균형’
매개적 사유를 ‘은유’로 표현 시리즈>
2015년 평론집 ‘미술의 집은 어디인가’를 준비하면서 표지를 고민하다가 송필의 작품으로 결정했다. ‘행-워킹’은 낙타가 수많은 신발을 짊어지고 가는 대작이다. 이후 책을 본 윤진섭 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감독이 이 작품을 2016년 전시에 초대하게 된다. 조각가 송필의 작업은 질과 양 모두에서 집요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요즘은 좀 위험스러운 낱말이기는 한데 ‘공예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때 유행한 용어인 장인(匠人)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는데 예술가, 작가, 그리고 조각가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할 수도 있지만 거의 사활을 걸고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찬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작품에 돌덩이같이 무겁고 과도한 욕망이 남긴 삶의 짐, 인간의 긴 여정이 남긴 기억의 창고, 그 와중에 살아보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에 기댄 길을 담는다. 이런 인류학적 서사를 통해 인간의 생명의 순환, 흐름, 여정에 대한 숭고를 경외의 시선으로 보는, 결국 ‘삶의 여정’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을 한다.” 전시 리플릿에 실린 작가노트는 자신의 작업을 스스로 요약한다. 오랫동안 그를 만나며 함께했지만 이렇게 정밀하게 자기 자신의 작업에 대해 밝힌 경우는 드물다.
송필의 조각을 ‘매체·조각 vs 신화·비판’으로 파악한 적이 있다. 우리는 무언가를 판단할 때 대개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본다. 그렇게 드러난 것과 연결시키는 태도야말로 인간답다. 그것은 예술의 관습으로 보증된다. 조각가 개인이 자신의 역량과 능력을 지속한다면 미학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외관으로서 형상은 그 과정을 드러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조각을 이룩하는 데 드는 노력은 작품의 의미와 감각 못지않게 고려돼야 한다. 물론 조각가 중에서 ‘손’이 좋은 작가들은 많지만, 그것만으로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술로서 조각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에 대한 논의는 다시 질료, 물질성에 이르게 한다.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동시대 미술이 확장한 영역은 장르로서 조각을 압박한다. 그런데 송필은 그것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면서 넘나든다.
회화의 구성은 메시지의 전달이면서 기어코 형상을 성취한다. 조각은 ‘매체’의 의미를 다시 환기시킨다. 이 지점에서 조각가 송필은 조각에 대한 자의식이 각별하다. 그의 돌과 브론즈는 조각의 존재론에 근본으로 그리고 격렬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든다. 전통이면서 기초라는 동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 둘을 조우하게 하는 능력으로서 조각이라는 영역을 한 개인이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이후 지속적으로 스테인리스, 야광 안료, 크리스털 등을 작품의 매재로 새로이 도입한다. 동시대 미술에서 논의되고 구현되는 매체성이 독자적인 힘을 구사하는 현 상황에선 거의 사장된 정의로서 클래식한 조각을 행사하는 역능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그 지점에서 갱신의 의지를 감응할 수 있게 한다. 여기가 송필 조각 작업의 미학적 특장이다.
억지스러운 현실 반영이나 비판이 아니라 작업 자체가 말하게 하는 방식이 송필의 스타일이다. 그가 조각에서 담아내는 뜻은 무엇일까. 이미 작품에서 드러낸 바와 같이 형식과 내용 양면 모두에서 드러나는 ‘비균형의 균형’은 매개적 사유를 은유한다. 최근작인 ‘블랙 미러’는 스테인리스와 야광 안료로 제작된 53×70×225㎝ 크기인데, 잔뿌리의 형태로 지상에 가까스로 버티고 있다. 불안하면서도 어떤 의지를 드러낸다. 게다가 사운드까지 도입해 그 효과를 높여 작업에 대한 집중도를 더 높인다. 여기서는 동시대에 가장 시급한 이슈인 기후변화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그의 지금까지의 작업과는 상관없는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새로운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조각을 벗어나는 비조각이나 반조각이 아니라 조각을 보충 혹은 보완하면서 훨씬 조각의 효과를 드높인다. 고정적으로 오해하고 어려운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전통적인 조각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유동적이고 융합화돼가는 상황 속에서 생생하고 새로운 조각의 개념에 대한 고찰을 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는 의미다.
송필의 조각 언어는 선언적이거나 직설 화법으로 구현되는 의견 표명, 또한 조형 언어와는 다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에둘러 가게 되기 마련이다. 이 방식은 우리의 시각에 제공되는 역동성이 그대로 전복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비판의 모습을 감지하게 한다. 감정의 섬세함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종의 조각적 수공예성을 구현한다. 그래서 형상의 사건이 질료의 증거들로 보존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이룩된 세계, 즉 드러난 작업은 그것이 하나의 조각이라는 사실을 현실화한다.
그런데 굳이 송필의 조각 작품에서 가시적인 것들에 대한 이름 붙이기를 구사하지 않더라도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촉각적 쾌락과 함께 몰려오는 물질성이다. 아찔할 정도의 매력으로, 숭고하게! 굳건한 조각에의 의지는 매체의 과격한 융합에 의해 부드럽게 비판된다. 여기에서 조각적인 것과 회화적인 것을 접속하고 있다. 특히 수묵화적 분위기를 사물로서 조각과 그림자의 관계 속에서 드러낸다. 그 산수풍경은 나뉘어서는 조각 작품과 그림자로서 수묵화를 의미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사물을 동시에 파악한다. 이때 사물들을 본다는 행위가 미학적이라면 거기에 바탕한 예술 작업들을 체험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요소이면서 환경인 것들이 집합적인 산수라는 풍경을 구성한다. 이런 자연에 대한 감각은 그 나름의 존재론을 만들고 그 바탕 위에 미학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의 관계가 더 이상 직접적으로 경험되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디지털에 기반한 스펙터클 재현 안에서 소원해지는 사회를 예술은 감당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에 오늘날 예술의 가장 예민하고 뜨거운 문제가 놓여 있다. 예술계에서 일상성의 구현을 고민한 드보르의 생각을 넘어 오늘날의 예술적 실천은 사회적 실험의 풍요로운 현장이자 행동의 획일화로부터 부분적으로 보호된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런 시대에 매개적 사유로서 “작품을 통하여 말한다”는 송필의 조각미학이 여전히 유효할까? 전통적 매체를 통해 개연성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태도가 예술로서 조각을 유지하는 힘일 수 있다. 무언가를 지탱하는 근거는 항상 역동적이다. 그는 매체를 통해 조각을 버티고 비판을 신화로 희석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을 작동시키는 것은 사건의 현장으로서 송필의 작업이다. 이런 국면에서 여전히 예술은 위로이면서 제기인 듯하다는 판단을 우리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매체의 시도는 사유 실험과 유사하다. 단절과 극복 그리고 역사성과 숭고 등은 이제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송필의 조각은 그 숙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것이다. 나는 “종말론의 유행으로부터 지속의 모색과 갱신에의 의지는 아주 소중하다”고 하면서 그의 조각미학을 지지해왔다. 그는 조각의 신화를 버릴 수 없기에 그것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조각 이후에 대한 지속적이면서도 꿋꿋한 기대 속에서 송필의 조각은 움직인다. 이에 대한 뒷받침은 그의 수공예적 노동이 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이것은 거의 하이데거가 말한 사유의 수공예 작업과 맞먹는다. 물체, 혹은 물질에 의한 감각을 통해서 거꾸로 역사를 포함한 현실에 대한 묘사를 시도한다. 일부러 왜곡하지는 않더라도 클래식한 방법론이 정신분열적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궁금한 것은 동시대미술에서 조각가 자신을 포함해 조각적 자의식이 여전히 작동하며 작업을 지속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 송필 조각가는
경희대에서 조각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를 마친 송필은 호리아트스페이스, 영은미술관, 중국 베이징 제로필드갤러리 등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기획단체전에 참여했다. 2015년 ‘구본주 예술상’을 수상하며 구상 조각계의 대표주자로 위치를 굳힌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상하이 젠다이 현대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송필의 모든 작품에는 과도한 욕망이 남긴 삶의 짐, 긴 여정이 남긴 기억의 창고, 살아보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에 기댄 길이 담긴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현대 유랑민, 현대인의 심리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런 인류학적 서사를 통해 인간의 생명의 순환, 흐름, 여정에 대한 숭고를 경외의 시선으로 보는, 결국 ‘삶의 여정’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을 한다.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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