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 참여하면 2만 원…'문자메시지 피싱'에 실제 응해봤더니
"3가지 영화 질문에 답변만 해주면 2만 원을 드립니다."
지난 4일 오후 한 언론사 기자의 '라인'(LINE·사회관계망서비스)으로 의문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기자는 '정말 2만 원을 받을 수 있나' 싶어서 연결해 봤습니다.
메시지를 보낸 인물은 자신을 영화 설문 조사를 하는 조사관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대뜸 영화와 관련한 3가지 질문에 A, B, C, D로 답하면 포상금으로 2만 원을 준다고 했습니다.
피싱(Phishing) 사기 냄새가 물씬 풍기긴 했지만, 새로운 수법이서 답변했더니 진짜 돈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는 은행명과 계좌번호를 요구했습니다.
이 2가지 정보로만 할 수 있는 사기는 거의 없으니 흔쾌히 보내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혁'이라는 이름으로 진짜 2만 원이 입금됐습니다.
대포통장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는 "더 많은 작업을 계속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하듯 '어색하고 딱딱한' 영어 번역체 한국어였습니다.
"계속하겠다"고 했더니 낯선 아이디를 알려주고 텔레그램으로 안내했습니다.
텔레그램에 접속해 이 아이디를 검색하니 '박애임'씨가 나왔습니다.
그에게 '설문 조사 더 하고 싶다'며 말을 걸었습니다.
말만 걸었는데 3만 원을 또 준다고 했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진짜로 3만 원이 입금됐습니다.
이어 '박애임'씨는 아까처럼 설문에 응답하면 5만 원을 더 준다고 했습니다.
순간 살짝 설렜습니다.
이렇게 사기에 말려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초대하는 단체방에 들어가면 20분마다 1개의 설문 문항이 올라오는데, 이 문항에 A, B, C, D로 응답하고 이를 스크린샷(화면 갈무리)으로 찍어 자신에게 보여주면 건당 5천 원을 준다는 것입니다.
박애임 씨는 207명이 모인 단체방에 기자를 초대했습니다.
정말로 영화 설문 문항이 올라왔고, 문항에 답한 화면을 박 씨에게 보내줬습니다.
5천 원이 적립됐고 5만 원이 되면 정산해 준다고 했습니다.
이때 단체방에 '진짜'가 등장했습니다.
'영화 사전 예매 시스템'이었습니다.
사전 예매권을 구입하면, 그러니까 돈을 입금하면 30%의 수익 붙여서 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최소 26만 원부터 최대 2천840만 원까지 금액대는 8가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최대 금액인 2천840만 원을 입금하면 30%에 해당하는 852만 원을 붙여서 3천692만 원으로 돌려준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기구나 싶었지만 단체방의 참여자들은 벌떼같이 달려들더니 '영화 사전 예매에 참여하겠다'며 너나 할 것 없이 송금 인증사진을 올렸습니다.
겉핥기 수준의 체험만 할 수는 없어 기자도 큰맘 먹고 한 발짝 더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26만 원을 박애임 씨가 알려준 계좌로 입금했습니다.
피싱 사기단과 계좌로 돈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경찰, 변호사의 조언도 받았습니다.
박애임 씨는 선심 쓰듯 '사전 예매에 성공했다'며 축하했습니다.
그러더니 "공식 영화 평론가 계정을 등록해야 한다"면서 수상한 인터넷 주소를 줬습니다.
'김안쥔'이라는 사람도 소개해줬습니다.
이후 절차는 그에게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토록 다정했던 박애임 씨의 말이 갑자기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김안쥔 씨에게 말을 걸자 "알려준 인터넷 주소에 접속해 트래픽을 늘리라"고 했습니다.
5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간단한 절차였습니다.
다 끝내고 나니 정말로 33만 8천 원이 입금됐습니다.
수익은 정확히 30%, 7만 8천 원이었습니다.
한 차례 사전 예매에 참여한 보상은 30% 수익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화 설문에 참여하고 받는 돈이 5천 원에서 1만 2천500원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이래저래 받는 돈을 생각하면 정말 '일반인은 알면서도 속겠구나' 싶었습니다.
영화 설문에 꼬박꼬박 응하면서 수익을 챙기던 찰나 박애임 씨는 속이 탔는지 자꾸만 영화 사전 예매 참여를 권했습니다.
싫다고 하자 돌변한 박 씨는 "영화 설문 적립금을 1만 2천500원에서 100원으로 낮추겠다"고 했습니다.
기자의 짧은 피싱 사기 체험기는 그렇게 강제로 막을 내렸습니다.
텔레그램 단체방을 나오기 직전까지 사람들은 영화 사전 예매 공지글에 열광하면서 송금 인증사진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영화 설문 사기'를 검색하면 사기 피해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자는 글부터 2천만 원을 잃었다는 하소연까지 다양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피해자가 우후죽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책임 관서'로 지정된 경기 일산동부경찰서는 2건의 사건을 접수해 수사 중입니다.
인터넷에 피해 호소 글이 많기는 하지만 정작 접수된 사건은 아직 많지 않다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일산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사기라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 돈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큰돈을 받고 나서 잠적하는, 리딩방과 거의 유사한 사기 수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결코 돈은 쉽게 벌 수 없다"며 "피해를 봤다면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사진=SNS 캡처,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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