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에는 생명도, 영혼도 없다? 재미로라도 ‘좀비 축구’ 더 쓰지 말자[김세훈의 스포츠IN]

김세훈 기자 2024. 2. 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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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왼쪽)이 지난 3일 아시안컵 8강 호주전에서 연장전 프리킥 역전골을 넣자 황희찬이 밝게 웃으며 달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축구는 좀비 축구?”

이번 아시안컵에 질뻔한 위기를 극적으로 거푸 벗어난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에 붙은 별명이다. 세계언론을 몽땅 뒤져보지 못했기에 누가 먼저 썼는지는 100%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로서는 한국 언론이 먼저 썼고 외신이 이를 받아 썼다는 의견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다.

좀비는 사전적 의미로 살아 있는 시체를 말한다. 아이티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믿는 부두교에서 유래했다. 영혼을 빼앗긴 채 죽었지만 죽지 않은 시체다. 좀비에게 물리면 멀쩡한 사람도 좀비가 된다. 무기력한 사람, 멍청이를 표현할 때도 좀비라는 단어가 쓰이기도 한다. 선거 후에도 계속 나오는 정치적 광고를 ‘zombie ad’라고 한다. 거짓임이 입증됐지만 계속 떠도는 거짓말은 ‘zombie lie’다. 지금은 좀비가 국제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자주 등장했다. 모두 좋지 않은, 부정적인 존재로 나온다.

그런 좀비라는 표현을 굳이 우리가 우리 대표팀을 향해 쓸 필요가 있을까. 좀비 대신 쓸만한 다른 단어가 정녕 없다는 말인가. 오뚝이는 참 예쁜 순우리말이다. 철인(鐵人), 불사조(不死鳥), 불멸의 호랑이도 괜찮다. 중국은 불사조, 봉황, 주작, 용을 불멸의 존재로 거론한다.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중국 번역서는 불사조(Phoenix)를 봉황(鳳凰)으로 썼다. 일본에서도 불사조(또는 피닉스)를 그대로 쓴다. 대체로 모두 웅장하며 멋진 의미들이다.

만일 일본대표팀이 한국처럼 벼랑 끝 위기에서 벗어나 승리를 이어갔다면, 일본이 스스로 좀비 축구라고 표현했을까. 중국에서 죽지 않은 존재를 부정적으로 의미하는 단어가 ‘강시’다. 굳어질 강(殭) 또는 넘어질 강(僵)에 시체 시(屍)가 붙었다. 지금 좀비와 거의 같다. 중국이 자국 축구팀을 강시 축구라고 했을까. 대신 불사조 축구 또는 봉황 축구, 일본에서는 피닉스 사커(フェニックスサッカー)라고 하지 않았을까. 중국은 한국이 중국 축구를 ‘소림 축구’라고 부르는 걸 싫어한다. 중국 플레이가 거친 건 ‘팩트’지만, 듣는 중국이 좋아할 리는 없다.

기자가 글을 쓰는 직업인이라서 좀비 축구라는 표현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군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기자가 단어를 민감하게 골라 적확하게 쓰는 건 기본적인 책무다.

지금 다른 외국 언론은 한국 축구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서남아시아 대표언론 알자지라는 ‘기적 제조기(Miracle Maker)’라고 적었다. AFP, CNN 등은 ‘드라마’ 또는 ‘드라마틱’이라고 표현했다. 일부 언론이 ‘좀비 축구’라는 표현을 썼지만 기사 안에 “불린다(have been dubbed, has been labelled)” 등 문구를 넣었다. 일본 언론 ‘풋볼존’도 “모국(母國) 언론은 ‘좀비 축구’라는 별명을 붙여 찬사하고 있다”고 썼다. 좀비 축구는 풋볼존이 만든 표현이 아님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일본 언론이 한국 축구를 비하했다는 비판을 원천 봉쇄한 셈이다.

좀비는 이미 죽었고 영혼도 없다. 한국 축구가 생명이 없나. 한국 축구에는 영혼도 없나. 그냥 단순히 재미로 좀비 축구를 붙였다고 해도 그게 좀비 축구라는 표현을 계속 써도 된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무척 직관적이라 눈을 사로잡는 문구라고 해도 우리 자신을 스스로 비하할 필요까지 있을까.

영국 매체 가디언은 5일 한국 축구 소식과 함께 4강전 예고 기사를 썼다. “카타르가 이란을 꺾고 결승에 올라 챔피언이 되려면 누군가는 한국 좀비를 죽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To do so, somebody is going to have to find a way to kill those Zombie Koreans)”고 적었다. 한국이 강하다는 표현이지만 한국 좀비를 죽인다는 문구가 거슬리는 건 기자뿐일까. 자기 비하는 남들에게는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을 존중해줄 타인은 없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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