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두 도시 이야기
포항 방사광가속기는 지역민이 사랑하는 연구시설이다. 포항 시민의 마음에 영웅으로 남아있는 고(故) 박태준 포스코 회장이 방사광가속기 사업 추진에 관여하기도 했고, 포항공과대학교가 세계적으로 이름난 연구 중심 대학이 되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포항시와 경상북도에서 수백억 원을 투자해 건물을 지어주고 연구비를 대주었던 노력도 간과할 수 없다. 그 결과 포항은 좋은 인재를 보유하고 첨단 산업에 강점을 가진 도시가 될 수 있었다.
과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포항 방사광가속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인 연구시설이라 할 만하다. 1995년 가동을 시작한 이래 기존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4세대 선형 방사광가속기라고 불리는 자유전자 레이저 연구시설을 새롭게 구축하는 등 꾸준히 성능을 높여 세계적인 연구시설이라는 위상을 유지했다.
덕분에 전국에서 해마다 수천 명의 과학자가 방문해 이 시설을 이용하고 있으며, 평균적으로 매년 500편이 넘는 논문이 출판된다. 이렇게 출판된 논문은 질적 수준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년 전 정부에서 새로운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하기로 했을 때, 전국적으로 이를 유치하려는 열풍이 일었다. 최종적으로 충북 오창이 선정됐지만, 그 이후 대형연구시설을 지역에 유치했을 때 기대되는 효과를 노리고 여러 지자체에서는 방사광가속기를 대신할 만한 시설을 찾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포항에 방사광가속기가 있다면 대전에는 연구용원자로 하나로가 있다. 이름에 '원자로'가 들어가기 때문에 엉뚱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설은 아닌지 오해를 받곤 하지만, 하나로는 방사광가속기와 유사한 용도로 만들어진 과학시설이다. 두 시설은 가동을 시작한 시점도 비슷하고, 연구 분야도 물질과학과 생명과학 그리고 소재, 부품, 바이오 등으로 상당 부분 겹친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방사광가속기에서는 빛의 일종인 엑스선과 자외선을 만들어 사용하고, 하나로에서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입자 중 하나인 중성자를 뽑아내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큰데, 엑스선과 중성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와의 반응이 극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상 이 두 가지 시설은 보완재로 여겨지며, 프랑스의 유명한 과학도시 그르노블에서처럼 방사광가속기와 연구용원자로를 바로 옆에 나란히 건설하는 예도 있다.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포항의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에는 36개의 엑스선과 자외선 빔 라인이 운영 중인 데 반해 하나로에는 공간적인 제약으로 그 절반 정도의 중성자 빔 라인이 설치돼 있다. 대신 원자로 주위에 시료를 넣어 직접 중성자를 쪼일 수 있는 수직 조사공이 여럿 있어서, 그 안에서는 마치 연금술처럼 원자핵을 변환하는 실험이 가능하다. 그 부산물로 암 치료에 사용하는 의약품이나 전력 반도체 소재도 얻을 수 있으니, 하나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다채롭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두 시설의 운명은 극적으로 엇갈렸다.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연구 실적이 기록을 경신하는 동안 하나로는 큰 지진이 올 것에 대비해 시설을 보강하느라 몇 년간 쉬어야 했고, 보강이 완료된 이후에도 갖은 제약으로 인해 원래 연간 200일 이상 가동할 수 있던 시설을, 한 해 겨우 50일 정도, 그것도 힘겹게 가동을 이어가고 있다. 빔 라인도 제때 적절한 투자를 받지 못해서 현재는 절반 정도만 가용한 실정이다.
국가 연구시설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주관 기관과 중앙 정부의 책무이긴 하지만, 요즘과 같이 지방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는 시대에 포항 방사광가속기와 비교되는 하나로의 상황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지자체에서 연구시설 유치에 노력하고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는 만큼, 애초에 주어진 역할은 충실히 하고 있는지 지역 기관과의 연계는 잘 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대전시의 과학 수도로서의 명성에 걸맞은 분발을 기대해 본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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