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은행, 환전 수수료 포기하는 까닭
미미한 환전 수수료 포기…대신 '고객' 확보
핵심은 '카드'…해외 결제 인프라 확대 주목
코로나19 대유행이 종료된 이후 해외 여행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닫혔던 하늘길이 다시금 열리면서 그동안 꽁꽁 싸매왔던 여행에 대한 욕구가 터져나온 영향이 컸다는 게 관련 업계의 중론입니다.
하늘길이 다시 열린 지금 해외여행객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해외 여행 이전 늘 점검해야 했던 '환전'에 대한 부담이 다소 내려간 겁니다. 일부 은행들이 환전 시 환율 수수료 우대율 100%를 선언하면서입니다. 여행비용을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게 된 겁니다.
그간 은행들이 매년 수수료 이익 극대화를 외쳐온 가운데 주요 수수료 수익원 중 하나를 포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요, 환전의 '판'이 바뀌고 있는 속내를 알아보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환전'
통상 지금 이뤄지고 있는 환전은 대부분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이뤄집니다. 환전의 기준이 되는 '매매기준율' 또한 1달러를 우리나라 원화와 바꿀 경우 얼마인지를 가늠하는 지표입니다. 우리가 익히 검색하는 '환율' 또한 이 매매기준율에 근거합니다.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할때 '가격'을 책정합니다. 각종 인건비와 거래 시 발생했던 비용 등을 감안해 수수료를 매기게 됩니다. 이 수수료는 외화를 '파는' 고객과 '사는' 고객에게 따라 달라집니다. 은행에 가면 전광판에 쓰여진 환율 안내문에 '사실 때' 금액과 '파실 때' 금액이 각각 고시돼 있던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그간 환전을 하는 고객이라면 '환전 우대율'을 따져보고 환전을 하셨을 겁니다. 이 우대율은 바로 이러한 수수료를 우대율 만큼 절감해 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매매기준율이 달러·원 환율 1000원이고 환전 수수료 10원으로 은행이 책정했을 경우 아무런 우대율이 없는 경우 1달러를 환전하는데에는 1010원이 들겠네요. 여기서 환전 우대율이 90%라면 환전 수수료 10원에 대해 90%를 할인해줘 수수료로는 1원만 받게됩니다. 1001원으로 1달러를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대율 100% 선언한 하나, 토스·신한도 합류
2022년 하나금융그룹은 금융권을 놀라게 할 만한 서비스를 내놓았습니다. 환전 고객에게 특화된 서비스 '트래블로그'를 내놓은 겁니다.
이 서비스는 하나은행 계좌 등에 보유하고 있는 예치금을 하나금융그룹의 포인트 서비스 하나머니로 바꾼 후 이를 해외 통화로 환전하는 서비스가 골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머니 포인트를 해외 통화로 결제할 때 환율 우대율 100%를 내건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수수료를 포기하겠다는 얘기였죠.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환전에 대한 수요도 동시에 늘어가는 가운데 '환율 우대율 100%'는 여행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 좋은 수단이 됐습니다. 트래블로그가 출시 18개월만에 환전금액 1조원을 돌파한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뒤이어 올해 초 토스뱅크가 최근 환율 우대율 100%를 선언한 외화통장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맞불을 놨습니다. 트래블로그가 원화→하나금융 포인트→외화 환전의 골조를 가졌다면 토스뱅크는 원화통장→외화통장→환전 이라는 과정만 다를 뿐 매우 흡사한 서비스입니다. 뒤이어 신한은행도 이달 중 환전 우대율 100%를 내건 체크카드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환전 수수료 '포기' 하는 까닭
사실 은행들엔 수수료는 참 골치아픈 존재였습니다. 이자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면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댓가로 수수료를 받는다는 비판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은행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핀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던 송금, 이체에 대한 수수료 무료 정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여전히 수수료 수익 증대에 대한 갈망은 높았습니다. 이자에 기댄 수익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서는 여전히 수수료 부분에서 이익을 끌어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전 수수료 '제로'를 선언한 까닭은 이를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사실상 수수료 우대율 80~90%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환전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수료 수익이 많지 않다는 것이 핵심 이유였습니다.
은행 한 관계자는 "외화 서비스 중 환전 서비스는 높은 우대율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기대할 수 있는 수수료 수익도 많지 않았다"라며 "이를 100%로 확대한다고 해도 은행들의 수수료 수익이 크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수료를 포기하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도 확연합니다. 바로 고객입니다. 은행업은 '규모의 경제'가 명확하게 적용되는 업권이라고도 하지요. 고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겁니다.
'환전'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부분
은행권 일부 관계자는 '환전 우대율 100%'가 시사하는 바도 큽니다. 디지털 기술을 타고 은행의 변화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는 겁니다.
사실 해외 여행 시 환전은 대부분 현금으로 이뤄져 왔던게 사실입니다. 해외 현지에서 카드 결제 시에는 추가적인 수수료도 발생하고 현금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입니다.
게다가 현금 없는 사회가 일찌감치 자리잡은 우리나라와 달리 아직 우리나라 여행객이 주로 찾는 나라중에서는 여전히 현금을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최근 환전 우대율 100% 서비스는 모두 '카드기반'입니다. 환전은 계좌 내에서만 이뤄져 현금을 들고 있을 필요가 없죠. 카드로 결제할 때는 결제 수수료 또한 면제해주는 정책을 같이 펼치고 있고 필요할 경우 현지 ATM에서 인출하는 방식입니다. 해외 여행 중 현금다발을 들고 이동하던 모습이 점차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해외에서의 결제 인프라도 '디지털 방식'이 주류가 됐다는 걸 의미합니다. 해외에서도 카드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카드 가맹점 등이 늘어났고 QR결제와 같은 디지털 기술 기반 결제가 자리잡았기 때문에 '현금'으로 환전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라는 대전제가 성립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환전 우대율 100% 정책을 펼치기 전부터 간편결제 기업들을 중심으로 더욱 혜택이 많은 해외 결제 서비스가 자리잡았던 상황"이라며 "이는 해외에서도 결제 인프라 확대 등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은행들이 연이어 내놓고 있는 환전 우대율 100%는 '싸게' 환전을 할 수 있는 서비스의 정착보다는 '쉽고 편하게' 환전하고 결제할 수 있게 됐다는 추세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은행에 융합된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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