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으로 치닫는 공사비 갈등… 해법 찾기 왜 어렵나[올앳부동산]

심윤지 기자 2024. 2. 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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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규제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실질적으로 사업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지 않고 있다.

결국은 ‘돈’이 문제다. 최근 2~3년간 치솟은 건설공사비를 누가 부담할 것인 지를 둘러싸고 조합과 시행사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고, 이는 공사 지연으로 이어진다. 시공계약 해지는 물론 공사 중단이나 법정 소송으로 비화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연합뉴스

양측 입장이 쉽게 좁혀지지 못하는 배경엔, 모호하게 체결된 도급계약이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수행하고 있는 공사비 검증 제도 역시 물가변동·금융비용 상승같은 핵심 분쟁 원인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공사비 갈등의 배경엔 ‘총액입찰제’

DL이앤씨는 최근 준공한 청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e편한세상부평그랑힐스) 조합과 신탁사를 상대로 ‘공사대금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자체 산정 결과 2020년 7월 착공 때보다 공사비가 1645억원이나 늘어났으니, 이를 지급해달라는 취지다.

양측은 ‘착공 이후 물가변동은 반영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두고 충돌했다. 조합은 도급계약서에 이러한 특약이 명시되어 있는만큼 물가변동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시공사는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예상하기 어려운’ 사유로 인해 공사비가 인상된만큼, 기계적으로 이 특약을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맞섰다.

이 사업장에서만 벌어지는 갈등이 아니다. 대부분 정비사업 도급계약은 ‘총액입찰공사’ 방식으로 체결된 뒤 ‘착공 이후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포함하고 있다. 설계변경이 잦은 정비사업 특성 상, 세부 내역을 하나하나 정하기보다 공사비 총액 수준만 합의해서 입찰과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자는 취지다.

원자잿값이나 인건비가 완만히 오를땐 시공사도 예상 물가상승폭을 감안해 공사비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조항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이 발표하는 주거용 건축물 건설공사비 지수(12월 기준)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전년대비 2.7~4.3%의 상승률을 유지했다. 통상적인 소비자물가 상승률(2~3%)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다.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2021년 12월 주거용 건축물 건설공사비 지수는 152.47로, 전년 동월 대비 13.5%가 올랐다. 2022년은 6.9%, 2023년은 3.3%가 각각 올랐다. 2021년 착공에 들어가 2023년 준공한 사업장은 공사비가 23% 넘게 올랐다는 계산이 나온다.

건설사 증액 요구에 ‘을’이 된 조합

결국 건설사들은 ‘계약 위반’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손해를 보고 사업을 할수 없다는 것이다.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는 2018년 최초도급계약 금액이 3.3㎡ 당 510만원이었으나,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이를 898만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인상폭은 무려 76%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공사계약변경 약정체결 총회에서 반대표(787표)가 찬성표(555표)보다 많이 나오면서, 상반기 중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받기로 했다.

그나마 ‘협상력’이 있는 강남권 조합은 사정이 낫다. 대다수 조합들은 시공 계약을 해지한다 해도 새로운 시공사를 찾기가 어렵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건설사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남시 산성구역 재개발조합은 2020년 3.3㎡ 당 428만원에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지난해 7월 이를 629만원으로 증액하기로 합의했다. 시공단(GS건설·대우건설·SK에코플랜트)과의 계약 해지를 의결했다가 재선정 공고에 입찰한 시공사가 없자 재협상에 나섰다. 북아현2구역 재개발조합도 공사비를 358만원에서 859만원(74.3%)으로 올려달라는 시공단(삼성물산·대림산업) 요구에 시공 계약 해지를 추진했다가 748만원에 최종 합의했다.

조합의 협상력이 떨어지는 배경에는 건설사와 조합 사이의 ‘정보 격차’도 존재한다. 정비사업 비전문가인 조합은 전문가인 건설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가 타당한지 검증하기 어렵다.

조승연 HnC 대표(서울시 건축위원회 위원)는 “애초에 총액입찰제로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공종별 공사비 인상 근거를 세부적으로 담은 자료를 잘 내놓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자료를 받아낸다 해도 이러한 인상 요구가 타당한지 검증할 전문 인력이 국내에는 부족하다”고 했다.

부동산원 공사비 검증도 한계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을 하는 단지들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신청한 건수는 제도가 도입된 2019년 3건에서 2020년 13건,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3년 30건으로 점차 증가했다.

하지만 부동산원도 공사비 증액 요구에 핵심이라 할수 있는 물가변동이나 금융비용 등은 검증 항목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원은 서초구 신반포4지구 재건축조합(메이플자이) 시공사인 GS건설이 조합에 요구한 증액분 4700억원 가운데 3180억원을 검증한 뒤, 1000억원 가량 감액한 2186억원을 제안했다. 하지만 공사비 증액 요구에 핵심이 되는 물가변동이나 금융비용(1800억원)등은 검증하지 않았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물가·금융비용 상승에 대한 기준점을 어디로 잡을 것인가를 두고 양측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검증 신청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조합과 시공사는 일단 금융비용과 물가상승분을 뺀 나머지 부분(2900억원)에 대해 재협상에 나섰지만, 갈등의 큰 불씨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이 공사비 검증 결과를 내놓는다 해도, 시공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를 강제할 수단은 없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비사업 도급계약은 민간 주체 사이의 계약인만큼 정부 중재안에 강제력을 두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정비사업 표준계약서’ 개정·배포라는 차선책을 내놨다. 사업의 ‘첫 단추’라 할수 있는 계약서 작성 단계에 공사비 총액 뿐 아니라 세부산출내역서까지 첨부하도록 공개한 것이 핵심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설계도면도 나오기 전 세부내역서를 제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며 “설계변경이 자주 일어나는 정비사업 특성 상 같은 갈등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반면 이윤홍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는 “세부산출내역서를 제출토록 한 것은 타당성 검토의 초기 자료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현장 근로자 인건비 항목도 반영하고, 설계변경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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