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래 칼럼] 트럼프와 푸틴이 다시 손을 잡는다면

조형래 기자 2024. 2. 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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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은 “푸틴에게 최고의 선물”
우크라 대반격 실패하면서 미국에서도 회의론 대두
‘푸틴 친구’ 트럼프 재선도 변수
북·중·러 밀착하는 가운데 현실주의적 외교 역량 절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8년 7월 16일 핀란드 헬싱키의 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CNN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작년 10월 7일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71세 생일이었다. 미국의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이 전쟁을 두고 “하마스가 푸틴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미국의 관심이 이스라엘로 쏠리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급격히 위축될 것으로 우려했다. 그 암울한 예상대로 서방과 독재국가의 대결인 우크라이나 전쟁은 잊힌 전쟁이 되어가고 있다. 푸틴은 중동의 총성과 함께 원유 공급망이 마비되고 국제 유가가 연일 치솟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원유와 가스는 러시아 GDP(국내총생산)의 17%,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절대적인 수익원이다.

이달로 만 2년을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은 들쥐가 들끓는 참호 속에서 수많은 군인이 숨져간 세계 1차 대전처럼 소모전으로 접어 들었다. 작년 하반기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은 고작 17㎞를 전진하는데 그치며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내부는 균열의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발레리 잘루지니 총사령관은 완전한 영토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전선은 적에게 유리한 소모전에 빠져 들었으며, 첨단 무기 없이 아름다운 돌파구는 없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최근 CNN 방송에도 비슷한 취지의 기고문을 보냈다. 간단히 요약하면 첨단·재래식 무기 생산 역량이 러시아에 밀리는데 무작정 공세에 나섰다가는 애꿎은 병사들만 희생시킨다는 이야기였다. 젤렌스키의 라이벌인 비탈리 클리츠코 키이우 시장은 “젤렌스키가 독재자가 되고 있다. 그는 마지막까지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그가 한 실수로 인해 결국 실각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게다가 공산주의 정권 시절부터 이어온 고질적인 내부 부패 문제도 여전하다. 젤렌스키가 작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고위 관료들을 대거 경질했는데도, 미국과 EU(유럽연합)는 재정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제재는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작년 러시아의 경제성장률(2.8%)이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강국을 크게 앞지른 것을 보면 어느 쪽이 제재를 받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미국과 EU는 2022년 하반기부터 러시아 원유 수출 가격을 시세의 70~80%인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정하도록 가격통제에 나섰다. 하지만 러시아는 중국·인도·인도네시아·중동 등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로 원유 수출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제재를 피해가고 있다. 중국의 러시아 원유 수입은 전쟁 전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했고 인도는 러시아 수출 물량의 40%를 소화해 주고 있다. 특히 이들 국가는 러시아에서 도입한 원유를 재가공해 제3국에 되파는 수출 기지 역할도 한다. 인도는 러시아 원유를 가공해 EU로 재수출하는 물량이 전쟁 전에 비해 무려 570%나 증가했다. EU 국가들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천연가스 38%, 원유 26%로 워낙 높았던 탓에 단기간에 공급망을 재편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전황이 묘하게 전개되자 지난 2년간 1110억달러(약 148조원) 이상을 지원해온 미국에서도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기지도 못하는 전쟁에 왜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하는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은 푸틴을 ‘멋진 남자’ ‘위대한 지도자’라고 불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다. 벌써부터 트럼프 눈치를 보기 시작한 공화당 의원들은 작년 말 2차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부결시킨 데 이어 최근 마련한 여야 합의안에 대해서도 연일 비난을 퍼붓고 있다.

트럼프는 요즘 선거 유세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하루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의 호언대로 어느 날 그가 푸틴과 손을 잡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제정치에서 국익 외에 영원한 가치는 없다. 북·중·러가 밀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외교 전략가 헨리 키신저 같은 현실주의 외교 역량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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