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돌고돌아 준연동제, 차라리 국민에 맡겨라

강필희 기자 2024. 2. 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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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선거권자가 규칙 만들기, 선수가 심판까지 겸하는 격
당리당략뿐인 개편안 논의, 주권자 무시 더는 용납안돼

“국민은 산식을 알 필요 없다.” 5년 전 더불어민주당과 준연동형 비례제 통과를 주도했던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가 한 말이다. 준연동형의 계산법이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자 이렇게 받아친 것이다. 사실 준연동제는 탄생 전부터 치명적인 민의 왜곡 부작용이 예고됐다. 한 정치학자가 알바니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위성정당 출현 가능성을 경고할 때만 해도 “지나친 상상력”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이 됐다. ‘국민은 알 필요 없는’ ‘초현실적’ 준연동형 비례제가 22대 총선에서도 재연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선거제 개편안 결정권을 위임받은 이재명 대표가 준연동제 유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준연동형 유지라는 최종 당론에 이르는 과정은 과연 선거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든다. 민주당은 5년 전에도 준연동형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 전력이 있다. 준연동형 비례제가 위성정당이라는 기형아를 낳은, 정당사 최대 오점이라는 국민 공감대는 형성된 지 오래다. 민주당조차 한때 준연동형 포기로 기울었다. 정당 설립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위성정당 저지 수단이 없는데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리 이번엔 위성정당이 ‘조국 신당’ ‘이낙연 신당’ 같은 제3지대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친명 세력의 위기감 때문이다. 좌고우면 갈팡질팡하던 지도부가 당원 전원투표 회부를 시도하고 여의치 않자 이 대표 개인에게 권한을 일임한 일련의 흐름은 제1 야당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회의하게 한다. 이 대표가 소수당과 연합해 창당을 약속한 ‘통합형비례정당’은 어떤 명분으로 치장해도 그냥 위성정당일 뿐이다.

당리당략에 얽매여 판단을 미루기는 선거구 획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선관위가 제시한 안을 정당이 수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월권이자 사실상 불법이다. 국회는 9년 전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구 획정 권한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넘겼다. 이해당사자간 자율조정은 불가능하다는 자체 판단에서다. 따라서 선관위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정하면 결정적 하자가 없는 한 국회는 따라야 한다. 획정위는 지난해 12월 6개 선거구 조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는 석 달째 쥐고만 있다.

국회가 확정을 망설이는 이유는 딱 하나다. 여든 야든 어떻게 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거구를 그을까 결론이 안 나서다. 그 바람에 부산은 1석이 줄지 18석 그대로 갈지 미정이다. 선거가 두 달 앞인데도 어디서 선거운동하고 투표할지 모르는 유권자와 후보자가 상당수다. 하지만 현역들은 급할 게 없다. 눈만 뜨면 싸우는 여야 의원들이 기득권 집착에는 대동단결하고 있다.

소선거구제와 대선거구제, 비례대표 증감을 놓고 여론조사를 해보면 때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른 응답이 나오기도 한다. 조사 주체나 사전지식 여부에 따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묻든 똑같이 나오는 대답이 있다. 바로 국회의원 숫자를 지금보다 늘리는데 반대한다는 의견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뽑아 놓은 국회의원이 국민을 무시하고 오히려 군림하려 하니 그 수를 늘려 뭐하겠느냐는 일관된 의사표현이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세상 모든 정상적인 기업이나 기관은 기획과 집행 파트가 분리되어 있다. 부처 이익에 함몰돼 조직을 벼랑으로 끌고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논리가 적용 안 되는 곳이 정치판이다. 선거제나 선거구 논란의 본질은 선수가 자신들을 규율할 경기규칙을 만들려하는데 있다. 선수가 심판까지 겸하는 격이다. 정치인이 정치공학에만 함몰돼 다수의 힘으로나 합종연횡으로 규칙 제정을 밀어붙이면 견제할 방법이 없다. 입법독재가 무서운 건 법을 만드는 의원 개개인이 국민을 대리한다는 대의민주주의 외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양식과 이성을 상실한 비대화한 입법권력이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현상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공통된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입에 담는 상투어가 ‘국민을 위해서’이다. 선거철이면 더 많이 듣게 되는 말이 ‘국민은 언제나 옳다’이다. 그렇다면 선거제 개편 방향을 아예 국민에게 물어 결정하는 건 어떤가. 국민투표든 여론조사든 방법은 무엇이어도 상관없다. 이번 총선 때 안 되면 다음 총선 때라도 그렇게 하자. 선거야말로 가장 강력한 국민 주권행위인데 대리인에 불과한 의원들이 주권행사 방식을 이렇게 제멋대로 주무르는 게 정상인가.


상식적인 국민이 이권에 눈 먼 국회의원보다 훨씬 합리적인 대안을 적기에 내놓을 수 있다. 입버릇처럼 되뇌는 특권 포기 약속이 진심이라면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 개편 권한부터 국민에게 넘겨라. 그래야 조금이나마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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