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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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가리는 AFC 아시안컵은 1956년 홍콩에서 처음 개최됐다.
전 세계 축구 대회 중 FIFA 월드컵(1회 대회 1930년 우루과이) 다음으로 주목을 끄는 유럽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1960년 프랑스에서 시작)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대륙 국가 대항전이다.
제1회 대회가 열렸을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대만 타이페이를 거쳐 경기 당일 오전 홍콩에 도착했다.
월드컵 단골 출전국인 강팀인데도 유독 아시안컵과 인연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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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의 축구 국가대표팀을 가리는 AFC 아시안컵은 1956년 홍콩에서 처음 개최됐다. 전 세계 축구 대회 중 FIFA 월드컵(1회 대회 1930년 우루과이) 다음으로 주목을 끄는 유럽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1960년 프랑스에서 시작)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대륙 국가 대항전이다.
제1회 대회가 열렸을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대만 타이페이를 거쳐 경기 당일 오전 홍콩에 도착했다. 그날 오후 4시(현지 시간) 홍콩과 곧바로 첫 경기를 치렀다. 폭우가 쏟아지는 악조건 속에서 전반에 두 골을 허용한 대표팀은 후반전에 2골을 만회하면서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어진 2차전 이스라엘(2-1 승)과 3차전 남베트남(5-3 승)을 연달아 꺾고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대표팀은 우승 트로피를 들고 경무대(현 청와대)를 방문해 당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귀중한 아시안컵 초대 우승 트로피는 한때 ‘분실 사고’가 발생했다. 트로피를 애타게 찾던 대한축구협회는 1990년대 후반부터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벌이는 등 소동이 일어났다. 어처구니 없게도 대한축구협회가 1985년 대한체육회에 기증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체육회도 별다른 설명을 달아놓지 않은 채 트로피만 전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허름한 트로피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몰랐던 셈이다. 그렇게 발견된 우승 트로피는 보존 처리를 통해 본래의 은빛을 되찾고, 등록문화재 제493호로 지정됐다. 트로피는 한국체육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1960년 한국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안컵에서 다시 챔피언 자리에 오른 대표팀은 이후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월드컵 단골 출전국인 강팀인데도 유독 아시안컵과 인연이 멀었다. 1972년, 1980년, 1988년, 2015년 네 차례 결승에 올랐지만 번번이 준우승에 그쳤다.
지난달 13일 카타르에서 막이 오른 제18회 아시안컵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준결승전(7일 자정 한국-요르단, 8일 자정 이란-카타르)과 결승전(11일 자정)만 남았다. 이번 대회는 전력 평준화로 연일 명승부가 이어져 월드컵 못지 않게 관심이 뜨겁다. 조별 리그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을 보였던 대표팀은 16강과 8강전에서 연이어 드라마틱한 연장 혈투를 벌이고 4강에 올라 흥행 돌풍 주역이 됐다. 4강전에서 승리하고 결승에 진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초대 챔피언 한국이 64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다면 설날 연휴 국민적 기쁨은 남다를 것이다.
강춘진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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