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돌며 위내시경·다이어트약 중복 주문… 한국은 지금 ‘마약 쓰나미’
국내 마약 사범이 매년 증가하며 2023년에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때 마약 청정국 소리를 듣던 이 땅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의 저자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 연재를 시작한다.
마약의 물결은 이미 일상의 진료실까지 파고들었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20대 여자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노란 포스트잇을 내민다. 향정신성 약물로 마약류로 분류된 다이어트 약이었다. 비쩍 마른 몸에 헝클어진 머리와 충혈되고 퀭한 눈, 중독임이 분명했다. 약을 잃어버렸다며, 같은 약을 다시 달라는 이도 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보면 우리 병원뿐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도 같은 약을 얼마 전에 처방받은 기록이 떴다. 아예 한 여자는 병원 앞을 서성이며 길가는 남자를 유혹해, 그 남자 이름으로 약을 받아 가려고 했다. 심지어 내시경에 수면 진정 목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프로포폴, 일명 우유 주사에 중독된 이는 프로포폴을 맞기 위해 병원을 돌아다니며 한 달에도 수차례 위내시경 검사를 받기도 했다. 한 외국인 남성은 채용을 위해 받은 마약류 검사에서 아편류(모르핀, 헤로인, 펜타닐 등) 양성 반응이 나왔다. 그는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람보다 검사가 더 정확한 법이다. 지인 의사 중에 마약류 관리 위반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마약이 일상이 된 것이다.
2023년은 마약의 해였다. 2월 8일 TV 조선의 “경찰, ‘프로포폴 상습 투약’ 영화배우 출국 금지” 단독 보도로 알려진 유아인의 마약 사건으로 시작하여, 12월 27일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이선균 씨가 생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마약에 대한 수많은 사건 보도가 연일 이어졌다.
국내 마약 사범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 백서’ 등에 따르면 1999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돌파하더니, 2022년 1만8395명을 기록했고 2023년에는 2만7611명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 이는 역대 최대일 뿐 아니라 1990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더 큰 우려를 낳는 것은 마약 사범의 변화이다. 2018년까지 기존 마약 사범은 40대(26.2%)가 주류였다. 하지만 2019~2020년대에는 30대, 2021년부터는 20대가 다수(31%)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가장 암울한 사실은 10대 마약 사범의 폭발적인 증가다. 10년 전 2013년 10대 마약 사범은 58명으로 전체 마약 사범 9764명 중 겨우 0.6%를 차지할 뿐이었다. 2023년 마약 사범이 2만7611명으로 10년 만에 2.8배 증가하는 동안 10대 마약 사범은 1477명으로 무려 25.5배 증가하여 마약 사범 전체의 5.3%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마약류 중독자들은 대개 10~20대에 마약류를 시작하여 중년까지 단약과 재발을 반복하다, 40~50대가 되면 급격히 줄어든다. 소수가 단약에 성공하고, 다수가 자살, 약물 과용, HIV, C형 간염 등의 질병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강력한 마약인 헤로인 중독자의 경우, 평균 수명이 37세에 불과하다. 10대와 20대 마약 사범의 증가는 앞으로 마약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을 예고한다.
연령이 어려진 것 외에도 성별의 비율도 변했다. 2013년 여성의 비율은 14.4%에 불과했으나, 2016년 처음으로 20%를 넘은 후, 2023년 현재 8910명으로 전체의 32.3%를 차지했다. 마약을 하는 3명 중 1명이 여자인 것이다.
특히 외국인 마약 사범도 크게 늘었다. 2013년 393명에서 2023년 3153명으로 10년 만에 8배 증가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외국인이 전체 마약류 사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 불과하지만, 밀수 사범에서는 4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또한 역대 최대 밀수 사건이었던 필로폰 902kg(도매가 기준 902억 원) 밀수 사건 또한 주범이 호주 출신의 외국인이었다. 그러니까 전체 마약 사범 수가 증가하는 가운데, 여성, 10대와 20대, 외국인이 더욱 큰 폭으로 증가했다.
마약의 종류 또한 다양해졌다.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메스암페타민, 상품명 필로폰, 속칭 히로뽕이 대세였다. 1970년대 가난했던 한국에서 범죄 조직은 홍콩 등에서 원료를 수입해 국내에서 필로폰을 생산한 뒤 부유한 일본에 팔아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이른바 ‘코리안 커넥션’이었다. 이에 한국과 일본은 합동으로 밀수 등 마약 단속에 나섰고, 이에 일본으로 판매되지 못한 필로폰이 한국에 쌓이자, 필로폰 생산자와 밀수꾼들은 새로운 판매 시장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그대로, 1980년대 경제 호황을 맞게 된 한국이었다. 때마침 전두환 정권의 ‘3S(Screen, Sports, Sex) 정책’과 1982년 1월 5일 통금 해제에 맞물려 필로폰이 유흥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필로폰 사범은 1980년 78명에서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3320명으로 8년 만에 40배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한국의 주요 마약은 필로폰이다.
최근 전 세계적인 대마 합법화 추세에 따라, 2013~2015년까지 1100여 명 선으로 잠잠하던 대마초(마리화나) 사범이 여행자나 유학생 등이 대마를 피우거나 밀수하는 경우가 늘어 2022년에는 3809명으로 7년 만에 4배 넘게 급증했다. 필로폰과 대마에 이어, 필로폰에 카페인을 섞은 동남아시아산 야바(YABA), 서구에서 인기 있는 환각제인 LSD나 엑스터시(MDMA), 아편계 진통제인 펜타닐 등 각양각색의 마약이 등장했다.
도대체 이 땅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사람을 넘어 사회를 파괴시키는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아는 것이다. 이에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 땅의 마약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마약청정국과 암수율
일반적으로 마약 청정국은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이하일 때를 말한다. 인구가 5000만 명인 한국의 경우, 대략 1만 명 이하이다. 한국은 이미 1999년 마약 사범이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 1만589명을 기록한 후 등락을 반복하다, 2015년부터는 단 한 번도 1만 명 이하로 내려가지 못했다. 2023년에는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인 2만7611명을 기록했으며,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마약은 감염된다. 마약투약자 한 명이 있으려면 마약을 만드는 이, 전달하는 이, 그리고 파는 이가 있다. 거기다 마약을 하지만, 아직 발각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 드러나지 않는 범죄 비율을 암수율이라고 하는데, 전문가 및 마약범죄자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통해 한국 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은 28.57배로 예측되었다. 이를 2023년 마약 사범 2만7611명을 넣어 계산해 보면, 무려 78만 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1.6%로 제주도 전체 인구(68만 명)보다 많다. 마약의 물결은 이미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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