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 작가의 통찰…‘가난’한데 명랑하면 이상한가요

조봉권 기자 2024. 2.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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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의 삶과 연지동 하야리아 부대 근처 마을의 추억을 간직한 독자에게 우선 이 소설집을 주저 없이 권한다.

거대한 현대 도시 부산의 나이테와도 같고, 좀 쑥스러운 속살 같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부산이라는 고장의 상징이기도 한 산복도로는 이정임의 두 번째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걷는사람 펴냄)을 통해 문학이 깃드는 장소·공간으로서 한결 풍성하고 성숙해지는 느낌이다.

작가의 삶터 자체가 연지동 하야리아 부대 근처 마을에서 시작해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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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

- 부산 수정·초량동 등 옛동네 배경
- 고달픈 삶속 역설적 생기 잡아내

산복도로의 삶과 연지동 하야리아 부대 근처 마을의 추억을 간직한 독자에게 우선 이 소설집을 주저 없이 권한다. 들뜨지 않고, 억지로 힘주지 않고 소설가 이정임은 산복도로에서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텃밭 채소 돌보듯 가꾸고 뜯어서 독자의 식탁에 올렸다.

두 번째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을 펴낸 이정임 소설가. 부산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에 사는 이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 산복도로의 삶을 섬세하게 투영했다. ⓔ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거대한 현대 도시 부산의 나이테와도 같고, 좀 쑥스러운 속살 같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부산이라는 고장의 상징이기도 한 산복도로는 이정임의 두 번째 소설집 ‘도망자의 마을’(걷는사람 펴냄)을 통해 문학이 깃드는 장소·공간으로서 한결 풍성하고 성숙해지는 느낌이다.


짚어둘 사항이 있다. ‘도망자의 마을’에는 단편소설 7편이 실렸다. 이 가운데 산복도로 특정 구간(부산 동구 수정동과 초량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오르 내리’ ‘도망자의 마을’ ‘벽, 난로’ 세 편 정도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는 오래전 부산 연지동 하야리아 부대 근처 동네의 삶 풍경이다. ‘점점 작아지는’은 지치고 몰린 도시 여성이 지리산 자락에서 며칠 보내는 이야기이며 ‘뽑기의 달인’에는 특정한 지역이 부각되지 않는다. 이 소설집 전체가 산복도로를 배경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고무는 늘 호양을 지켜 준다 생각했는데 엄마로부터 독립을 하고서야 오히려 자신이 호양에게서 보호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벽, 난로’에서) 이 대목을 읽으며 이 소설집을 꿰는 문장을 만난 느낌이 왔다.

가난이 디폴트(기본값)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다 보니, 주인공들은 자주 ‘어둠’ 속을 헤맨다. 그런데 이 단편집의 색감은 무거운 단색이 아니다. 설명하기 힘든 생기와 독특한 화사함이 뜻밖의 순간에 찌르고 들어온다. 이 책에 ‘뜬구름을 잡고 용기를 감행하다’는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장예원은 이런 특징을 잘 짚었다.

“주체들은 고달픈 장면들을 응시하며 가득한 고통을 들이마시면서도 비관에 빠져 있지만은 않다. 오히려 이정임의 소설에서는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특유의 명랑성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곧 암담한 현실을 적절한 경계와 한정으로 형식화하는 그녀만의 예술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명랑성! 다른 데서 좀체 느끼기 힘든 독특·희한한 명랑성이 이 소설집에는 있다.

“와 웃노?/ 좋아서. 우리 둘 다 사람 같고 좋네./ 그러자 금자가 말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좋을 것도 쌔고 쌨다.” (‘비로소, 사람’ 끝 문장) 이런 끝 문장에 닿기까지 주인공들은 먼 길을 힘겹게 돌고 돈다. 그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이 있는데, 주요 인물끼리 갈등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보호·힘을 주고 있었다. 이런 게 험한 곳에서 힘든 삶을 살아도 어느 순간 사람이 싱긋 웃는 비결 아닌가.

망양로 등 부산 산복도로를 지나는 버스를 타면, 시내에서 우르르 탔던 승객이 어느 지점에서 일시에 내려 버려 버스 좌석이 갑자기 널널해진다. 이런 깨알 같은 디테일을 만나는 재미도 느낀다. 이정임 작가는 현재 부산 동구 수정동 산복도로에서 산다. 작가의 삶터 자체가 연지동 하야리아 부대 근처 마을에서 시작해 산복도로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정임은 가난 결핍 불편의 단색조에만 치우치거나, 과장되게 스토리텔링 하려 들거나, 소재주의에 물들지 않으면서 사뭇 절묘하게 등단 17년째(그는 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를 맞은 중견 여성 작가로서 ‘나만의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풀어낸다. 그런 점이 생기를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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