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키워드로 보는 2024 골프용품 트렌드
포지드 카본 등 복합소재 사용 확대
이종조합 ‘콤보세트’ 아이언 늘 전망
‘맥스의 홍수’···컬러는 블루가 대세
1. MOI 1만g/㎠
올해를 시작으로 골프용품과 관련해 향후 가장 자주 듣게 될 숫자는 10K(1만)일 것이다. 10K는 1000을 나타내는 킬로(kilo)의 K를 붙여 1만을 의미한다. 업체들이 말하는 10K는 관성모멘트(Moment Of Inertia: MOI)의 수치다. 테일러메이드(Qi10)와 핑(G430 맥스 10K)은 자사 드라이버의 MOI 수치가 1만을 넘어선 걸 강조하기 위해 제품명에 숫자 10을 넣었다.
MOI는 회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물체가 계속 회전하려는 힘(관성)의 크기를 말한다. 골프에서는 헤드의 뒤틀림에 대한 저항이라고도 한다. MOI의 단위는 제곱센티미터 당 그램(g/㎠)이다. MOI 수치가 클수록 뒤틀림에 대한 저항이 크다. 이는 볼이 페이스 중심을 벗어난 부분에 맞더라도 실수에 대한 관용성이 커 직진성이 우수한 클럽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골프에서 숫자는 종종 룰이 정한 한계를 의미한다. 460cc는 헤드 사이즈의 한계, 46인치는 클럽 길이의 한계, 0.830은 페이스 반발력의 한계 등이다. 크기, 길이, 반발력에서 이미 한계에 다다른 골프용품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돌파구로 찾은 게 MOI다. 테일러메이드의 Qi10에서 Qi는 ‘관성에 대한 탐구(Quest for Inertia)’를 뜻한다.
골프 규칙에서 정한 MOI의 한계치는 5900g/㎠이다. 그런데 10K는 어디서 툭 튀어나왔을까. 규칙이 정한 MOI는 페이스의 수평 방향에만 적용된다. 1만은 수평 방향에 수직 방향 MOI 수치를 더한 것이다. 어쨌든 테일러메이드와 핑이 10K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들도 10K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10’이 있다. 타이틀리스트 보키 디자인 SM10 웨지다. 2년 만에 업그레이드 돼온 SM 웨지의 새 버전이다. 조던 스피스, 윌 잴러토리스, 김주형, 안병훈 등은 이미 SM10 웨지로 갈아탔다.
2. AI
전 산업에 걸쳐 AI(인공지능) 혁명 물결이 거세다. 골프라고 빗겨갈 순 없다. 골프클럽 설계 분야에서 AI는 이미 빼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골프클럽 제조업체 중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은 캘러웨이다. 올해 이 회사의 신제품은 패러다임 Ai-스모크다. 골퍼들의 스윙 데이터와 AI 기술이 접목돼 페이스 전체가 스위트 스폿 기능을 하는 ‘AI 스마트 페이스’를 창조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AI의 최대 강점은 빅 데이터를 활용한 분석과 정교한 시뮬레이션, 그리고 학습을 통해 스스로 진화하는 딥 러닝이다. 이전 컴퓨터로는 수십 년이 걸리던 일을 AI는 매우 빠른 속도로 처리하며 상상력도 이미 인간을 넘어섰다. 패러다임 Ai-스모크에서는 페이스 안쪽을 잔물결 문양으로 처리한 것이 대표적인 AI 활용 기술이다. 드라이버에 적용하던 이 기술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 지난해 연말부터 오디세이 Ai-원 퍼터에도 반영됐다. Ai-원 퍼터에는 페이스 뒤의 이 독특한 문양을 볼 수 있도록 투명 윈도(창)도 있다.
2019년 출시된 에픽 플래시부터 AI를 활용하고 있는 캘러웨이는 현재 전 클럽에 걸쳐 AI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볼 개발에도 AI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브라골프와 윌슨 등도 페이스 제작을 비롯한 각종 임팩트 시뮬레이션에 AI를 이용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들도 향후 AI를 적극 활용할까. AI는 불평불만도 없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투입 비용 대비 효용 측면에서 AI가 인간을 훨씬 앞서기 때문에 이윤 추구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기업들이 도입을 꺼릴 이유가 없다.
3. 카본
AI가 소프트웨어의 혁신이라면 소재 분야의 혁신은 카본이다. 탄소섬유로 만든 카본은 우주항공, 첨단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가전제품까지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카본의 가장 큰 장점은 가벼우면서도 강하다는 것이다. 무게가 철의 25%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10배다. 이에 따라 카본을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의 잉여무게를 다른 곳에 재배치할 수 있다.
철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듯 카본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포지드 카본(Forged Carbon: 단조 카본)이다. 일반적인 카본은 탄소섬유를 능직(사선 문양) 또는 평직(체크 문양)으로 짠 것이다. 자세히 보면 섬유를 짠 모양이 그대로 살아 있다. 드라이버의 헤드 뚜껑에 해당하는 크라운 부분을 보면 이런 문양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포지드 카본은 탄소섬유 결정체를 고압으로 가공해 만든 것이다. 직물을 짠 문양이 없는 대신 물결이나 마블링, 또는 연기가 확산되는 듯한 독특한 무늬가 보인다. 포지드 카본은 일반 카본에 비해 좀 더 정밀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지드 카본은 캘러웨이와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람보르기니가 공동으로 개발했다. 최근에는 자동차의 래핑에도 포지드 카본이 많이 이용된다. 캘러웨이는 이미 10여 년 전에 포지드 카본으로 골프채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패러다임 드라이버의 헤드 몸체에 적용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다.
캘러웨이는 올해 신제품인 패러다임 Ai-스모크의 헤드 바닥 부분인 솔에 포지드 카본을 사용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독특한 패턴 부분이 바로 포지드 카본이다. 이 무늬 때문에 캘러웨이의 신제품 이름에 ‘스모크’라는 단어가 사용된 걸까. 연기를 배경으로 제품 포스터를 촬영한 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스모크(smoke)는 ‘연기’라는 뜻 외에 ‘멀리 쳤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제대로 멀리 쳤다(Smoked it)”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월등한 비거리를 강조하기 위해 스모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게 캘러웨이의 설명이다.
캘러웨이와 우드 시장을 놓고 매년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테일러메이드 역시 신제품인 Qi10 드라이버를 개발하면서 카본의 사용을 확대했다. 직전 스텔스 2 드라이버의 크라운에서 카본이 차지하는 면적 비율은 79%였는데 올해 Qi10에서는 97%로 확대했다. 미즈노 역시 ST-맥스 230을 내놓으면서 크라운의 카본 면적을 40% 늘렸다.
카본의 사용은 우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언과 퍼터 등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클럽 제조업체들의 카본 사용은 앞으로도 계속 늘 전망이다.
4. 맥스 vs 롤백
ST-230 맥스(미즈노), Qi10 맥스(테일러메이드), 패러다임 Ai-스모크 맥스(캘러웨이), G430 맥스 10K(핑), 다크스피드 맥스(코브라)···. 가히 맥스(MAX)의 전성시대다. 맥스가 안 들어간 클럽을 찾아보기가 오히려 힘들어졌다. 비거리에 대한 골퍼들의 끊임없는 욕망과 골프용품 제조업체들의 마케팅 전략이 서로 결합한 결과다. 더 멀리, 똑바로 날리기 위해 반발력, 반발영역, 헤드 사이즈, 관성모멘트 등 가능한 모든 것들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고 하는 시대다.
맥스의 반대 선상에는 ‘역행’ ‘후퇴’ 등의 의미를 가진 롤백(Rollback)이 자리하고 있다. 맥스가 제조업체들의 캐치프레이즈라면 롤백은 거버넌스(관리) 역할을 하는 골프 규칙 관장 기구인 영국 R&A와 미국골프협회(USGA)의 언어다.
R&A와 USGA는 지난해 12월 골프볼 비거리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스윙 스피드 시속 125마일(시속 201km), 발사각도 11도, 분당 백스핀(rpm) 2200회로 볼을 때렸을 때 비거리가 317야드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새로운 규정이다. 이는 현행 기준보다 스윙 스피드는 5마일, 발사각도는 1도 증가하고 백스핀은 320rpm 감소한 상태의 테스트 조건이다.
새로운 기준에 맞춰 볼을 만들게 되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평균 선수의 비거리 손실은 9~11야드, 여자 프로 선수는 5∼7야드, 일반 아마추어 골퍼는 약 5야드 정도일 것으로 R&A와 USGA는 전망하고 있다. 새로운 규정은 프로에게는 2028년, 아마추어에게는 2030년부터 적용된다. 볼 제조업체들은 새 규정이 볼 시장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5. 콤보 세트
2종류 이상의 아이언으로 세트를 구성하는 걸 콤보 세트(Combo Set) 또는 콤비네이션 세트(Combination Set)라고 한다. 지난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대상(MVP)을 수상한 함정우는 캘러웨이의 제품을 사용했는데 4번 아이언을 X-포지드 유틸리티(24도)로 대체하고, 5~6번 아이언은 X-포지드, 7번~피칭 웨지는 에이펙스 MB 모델로 채웠다. 괴력의 장타자 정찬민도 드라이빙 아이언까지 포함해 3종류 모델로 아이언 세트를 구성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상당수 선수들도 콤보 세트를 애용한다.
콤보 세트의 가장 큰 장점은 획일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롱 아이언은 다루기 편하고 볼의 탄도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캐비티백(CB) 스타일로 채우고, 미들 아이언부터는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머슬백(MB) 형태로 구성하는 것이다. 롱 아이언은 안정성과 관용성에, 미들 아이언부터는 정확성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하이브리드나 드라이빙 아이언을 추가하기도 한다.
콤보 세트 구성은 주로 프로 골퍼들이 하는 걸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아마추어 골퍼들도 ‘이종 조합’을 추구하는 시대가 됐다. 현재 핑과 코브라 아이언의 경우 콤보 세트로 구매할 수 있고, 타이틀리스트 아이언도 커스텀 방식으로 1개씩 구매할 수 있다. 해외 직구를 통해 콤보 세트를 구매하는 골퍼들도 있다.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콤보 세트의 판매나 수요가 많지 않지만 차츰 상급자를 중심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6. 풀 페이스 그루브
그루브는 페이스의 표면에 새겨져 있는 홈을 말한다. 타이어의 홈이 빗길에서도 물의 배출을 도와 지면과의 마찰력을 높이듯 골프클럽의 그루브도 볼과의 접지력를 좋게 해 백스핀이 많이 걸리게 한다. 그루브는 보통 페이스의 가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헤드의 바깥쪽인 토에는 새겨져 있지 않다. 토에 볼이 맞을 경우 그루브가 사실상 제 역할을 크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웨지에서는 ‘풀 그루브’ 또는 ‘풀 페이스 그루브’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이는 토 부분을 포함한 페이스 전체에 그루브를 새긴 걸 말한다. 웨지는 헤드를 열고 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풀 페이스 웨지는 토 부분에 볼이 맞아도 충분한 스핀력을 제공한다는 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클리브랜드에 이어 올해 미즈노가 출시한 MX-1 아이언의 웨지에도 풀 페이스 그루브가 장착됐다.
7. 블루
컬러에도 유행이 있다. 올해 골프클럽에서 흔히 보이는 색은 블루다. 스텔스 시리즈에 강렬한 레드 페이스를 장착했던 테일러메이드는 올해 Qi10 드라이버를 출시하면서 블루 페이스로 변화를 줬다. 미즈노 ST-230 맥스는 코어테크 챔버와 로고 부분에 블루 컬러를 넣었다. 젝시오 13은 솔의 무게 추에 블루를 포인트 색으로 넣었다. 지난해 딥블루를 패러다임의 메인 컬러로 설정했던 캘러웨이는 올해 신제품인 Ai-스모크의 로고와 무게 추를 블루로 장식했다. 서양의 골프클럽 제조업체들이 ‘청룡의 해’를 감안했을 리는 만무한데 공교롭게도 올해는 블루 컬러가 자주 보이고 있다.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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