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6] 네가 말할 첫 단어는
[교사 김혜인] 꿈을 꾸었다. 아직 ‘엄마’조차 말하지 않는 아이가 갑자기 문장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아이와 대화가 되었다. 너무 기뻐서 가족들에게 말하려는데 차마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울먹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의 발달 지연 진단을 받고도 유쾌하게 지내며 조급해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실은 마음 한편에서 신경이 많이 쓰이고 있나 보다.
함께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더러는 위로로, 더러는 소망으로 얘기한다. 단계를 건너뛰어 발달하는 아이도 있다더라. 내가 아는 누구는 기지 않고 바로 앉았다가 섰다더라. 내가 아는 누구는 그렇게 말을 안 했는데 말문이 트이니 문장으로 술술 말하더라.
그러나 내 아이는 지금까지 단계를 건너뛴 적이 없었다. 아이는 토끼와 거북이 중에 거북이로 태어났다. 아이는 또래보다 오랫동안 누워만 있다가 뒤집기를 했고, 또 한참 지나서야 되집기를 했다. 배밀이를 시작한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무릎을 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정말 네발기기를 건너뛰려나 했다. 또래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가 되니 비로소 네발기기를 했다.
소근육 발달은 더 늦었다. 꽤 늦게까지 양손을 함께 사용하질 못했다. 각종 딸랑이가 있었지만 쥐고 흔드는 동작을 첫돌이 지나서도 안 했다. 상호작용도 잘 안 되어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돌 무렵에 다들 하는 짝짜꿍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20개월이 가까워지니 드디어 딸랑이도 흔들고 짝짜꿍이나 안녕 비슷한 것을 가끔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독서 모임에서 만났다. 우리는 출산하기도 전에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하곤 했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는 여러 발달 영역 중에서 언어가 가장 느리다.
장난감 버튼을 누르고 있는 아이 곁으로 갔다. 여러 색깔의 건반과 공이 있는 장난감이었다. 아이와 어떻게든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색깔을 말해 주었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파란색 공 꺼내 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정말로 파란색 공을 집어 들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의심하며 다시 노란색 공을 꺼내라고 했더니 노란색을 집었다. 다시 빨간색도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어느새 또 자라 있었다.
아이가 단계를 껑충 건너뛰어 발달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내 아이는 하나도 빠짐없이 차근차근 순서대로 하는 중이다.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여러 번 속으로 연습하고 조심스럽게 반걸음씩 내딛는다. 남들보다는 느리다. 도달해야 할 목표도, 이겨야 할 대상도 없으니 괜찮다.
내 아이가 의미를 가지고 말하는 첫 단어는 ‘엄마’일 것이다. 그럼 나는 꿈에서처럼 울먹이느라 목이 메겠지.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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