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리더십’ 탄력받는다…꽉 막혔던 투자·인수합병 ‘급물살’ 탈듯
하만 인수후 멈췄던 인수합병
다시 속도감 있게 전개할 듯
미국 차기 대선 앞두고 못 푼
보조금 집행 등 불확실성 극복
2심 재판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지만 법정 인신 구속 등 급격한 경영 공백에 대한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와해된 컨트롤타워의 복구부터 글로벌 대형 인수합병(M&A)까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현안이 다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 회장의 재판이 시작된 지난 2021년부터 사실상 반쪽짜리 경영을 해왔다. 앞서 이 회장은 국정농단 재판 당시 4년여 시간 동안 법원을 오갔다. 2021년 8월 국정농단 건 사면으로 경영 복귀 후에도 부당합병·회계부정 공판이 이어졌다.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 시작된 후 이 회장은 106번의 공판 중 95회를 직접 출석했다. 불출석한 10여회도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일정들로 인한 불가피한 사유였다. 공판 1회에 평균 6~7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총 600여 시간을 법원에서 보낸 셈이다.
이 같은 사법 리스크는 실제 글로벌 경영의 족쇄가 됐다. 과거 사법 리스크 전 이 회장은 한 해에 미국 출장만 5회 가는 등 해외 일정을 활발하게 소화했다. 2014년 7월에만 2주 차이로 미국을 두 번 다녀오며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 합의를 끌어낸 게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는 경영상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일정을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지난해 5월, 22일 동안 진행된 미국 출장에서 20여명의 CEO를 숨가쁘게 만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공판 일정을 고려해 출장이 가능한 기간에 최대한 많은 일정을 몰아넣어 소화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고객사가 아닌 법원 일정에 맞춰 미팅을 진행하면 최상의 경영 성과를 끌어내기 어려운 게 당연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핵심 사업에서 글로벌 라이벌에게 1위 자리를 내주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스마트폰 판매량에선 13년 만에 처음으로 애플에게 왕관을 내줬고 반도체도 2년 만에 인텔에 재역전당하며 매출 1위 자리를 뺏겼다.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만큼 올해는 반전의 카드가 필요하다.
우선 대형 M&A 성과가 주목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이 회장의 주도로 2016년 80억달러를 투자해 하만을 인수했다. 하만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면서 반도체 업황 부진 속 삼성의 숨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만 이후 이 회장의 부재로 멈춰있던 M&A는 8년 만에 다시 속도감 있게 전개될 전망이다. 이에 앞서 지난 연말 신사업 발굴을 위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며 조직도 선제 정비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도 연초 미국 국제가전정보통신 박람회(CES)에서 “(대형 M&A가) 올해에는 뭔가 계획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존 주축 사업인 반도체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도 이 회장의 중요한 과제다.
특히 미국 차기 대선을 앞두고 아직 매듭지지 못한 보조금 집행에 변수가 없도록 하는 게 급선무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8000억원)를 투자해 약 500만㎡(150만평) 규모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반도체지원법(Chips Act·반도체법) 기업에 대한 지원 규모를 축소하거나 지원 규모는 유지하더라도 새로운 조건을 걸 수도 있다.
이 회장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6G 네트워크 선점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재용 회장은 올해 첫 경영 행보로 6G 통신기술 개발 현장을 찾으며 네트워크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이 회장은 네트워크 산업에서 직접 빅딜을 이끌어왔다. 지난 2020년 버라이즌과의 7조9000억원 대규모 5G 장기계약, 2021년 NTT도코모와의 통신장비 계약 당시 이들 통신회사의 CEO와 직접 만남을 통해 협상을 진척시켰다. 재계 관계자는 “통신장비 사업의 경우엔 대부분 대규모 계약인데다 주요 기간망으로 사회 인프라 성격이어서 경영진 간 확고한 신뢰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다양한 미션들을 속도감 있게 해결해나가기 위해선 유기적인 그룹 운영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그동안 조심스러웠던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와 컨트롤타워 재건 문제도 다시 논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은 2017년 2월 마지막 컨트롤타워인 미전실이 국정농단 여파로 공식 해체된 이후엔 사실상 자율경영 체제를 선택했다. 컨트롤타워를 없애고 △사업지원(삼성전자) △금융 경쟁력 제고(삼성생명)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삼성물산) 등 3개의 태스크포스(TF)가 맞물려 돌아가며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컨트롤타워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투자와 미래 먹거리 발굴이 좀처럼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는 바이오, 배터리 등은 모두 2010년 미전실이 존재했던 시기에 키운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외부 감시자인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많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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