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유예가 빚은 ‘수요 없는 공급’, 지역 활기까지 무너뜨렸다[위기의 건설업]

김경민·심윤지 기자 2024. 2. 5.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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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미분양에 말라붙는 대구 경제
대구 남구 대명동 대명힐스테이트센트럴 공사현장. 대명힐스테이트1차는 분양 완판됐지만 2차는 절반 이상이 미분양된 상태다. 김경민 기자
대구 수성구 빌리브 헤리티지 상가에 임대 홍보물이 붙어 있다. 빌리브 헤리티지는 PF 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서 미분양된 121가구를 공매 매각 처리했다. 김경민 기자
미분양, 대명동에만 2269가구
‘마이너스피’에도 수요 시큰둥
2020년 용적률 제한 조례 통과
업계 반발 탓 시행 5개월 늦춰
사업성 낮아도 일단 승인신청
결국 침체기 오자 미분양 전락
전문가 “물량 소진에 5년 필요”
인위적 ‘연착륙’ 경계 목소리도

대구는 ‘미분양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지난해 12월 대구 미분양 주택은 1만245가구로, 수도권 전체 미분양 물량(1만135가구)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그나마 대구시가 신규 주택 인허가를 중단한 지난해 2월(1만3987가구)보다는 26.7% 줄었다.

지역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심상치 않다. 지난해 신규분양이 0건에 그치고 일부 물량이 임대주택으로 전환되면서 생긴 ‘착시효과’일 뿐, 실제로 미분양 위기가 해소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잉공급된 물량이 시장에서 소화되기까지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5일 업계에 따르면 동대구역에서 지하철로 13분 떨어진 남구 대명동은 대구에서도 미분양이 가장 많은 곳(지난해 12월 기준 2269가구)이다. 오래된 주택단지 뒤로는 ‘골드클래스센트럴’ 주상복합 건설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문만 열려 있을 뿐 작업 중인 노동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개점휴업’ 상태다.

골드클래스센트럴은 660가구 중 27가구만 실제 계약이 성사돼 지난해 6월 분양승인이 취소됐고, 결국 임대아파트로 전환됐다. 골드클래스센트럴 바로 옆 힐스테이트대명센트럴 2차는 그나마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역시 절반 이상이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이 단지는 최근 계약금을 10%에서 5%로 변경하고, 입주축하금 2000만원을 지급하는 등 ‘할인분양’에 나섰다. 견본주택에서 만난 한 분양대행사 직원은 “조건 변경 후 매물이 많이 소진됐다”며 “선호도 높은 수성구 범어동 매물부터 빠진 뒤 대명동으로 수요가 내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지 인근 주민들은 분위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구 대명동은 대구에서도 개발이 더뎠던 낙후 지역인데다 노령층 비율이 많고 인구도 빠르게 줄고 있어, 미분양 주택을 살만한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5000만원 ‘마이너스피’가 붙은 분양권 매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지역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과잉공급’은 대구 전체가 겪는 문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통상 적정 수요량을 지역 인구의 0.5% 정도로 본다. 이에 따르면 수요에 맞는 대구의 1년 적정 공급 물량은 1만~1만5000가구 정도다. 하지만 2020년 이후 대구에 공급된 물량은 적정치를 훌쩍 넘겼다. 대구 기반 부동산 분양업체 애드메이저 집계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대구 입주 물량은 9만가구에 육박했다.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입주 예정인 물량도 후분양 제외 3만5000가구나 된다.

남구 중개사 A씨는 “대구는 땅값이 싼데다 분양가상한제 도입이 늦어 서울보다 비싸게 팔수 있었다”며 “부동산 호황기에 외지의 대형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몰려들었고, 사업성이 없는 지역에 40~50층짜리 건물을 짓다가 경기침체와 함께 물린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과잉공급이 가속화된 배경으로 대구시의 용적률 규제 도입 지연을 꼽았다. 대구시의회는 2020년 12월 상업지역 내 주거용 용적률을 최대 1300%에서 450%로 제한하는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상업지구 내에 주상복합이 과잉공급되면서 ‘난개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의회는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이유로 조례 시행 시점을 2021년 5월까지 유예했다. 유예기간 5개월 동안 대구시에는 ‘용적률 막차’를 타기 위한 개발업자들의 승인 신청이 밀려들었다. 그사이 대구시가 승인한 아파트 건축은 총 24건, 1년 미분양 가구 수와 맞먹는 1만2000가구에 달했다.

정밀한 수요예측 없이 지어진 건물들은 결국 미분양으로 남았고, 이는 건설사뿐 아니라 대구 경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지역 건설사는 물론 분양대행사부터 공인중개업 등 관련 업계 피해는 이미 현실화됐다.

한 분양대행사는 2022년 19명이던 직원이 지난해 11명으로 줄었다. 이 업체 대표는 “말 그대로 고사 직전”이라며 “당분간 지역 분양업체에 돌아가는 일감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건설과 입주가 지역 전체의 소비로 이어지는 효과가 큰 만큼,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미분양 물량이 소진되기까지는 빠르면 3년, 길면 5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장을 살려 최악은 피해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정부는 지방의 준공후 미분양을 주택 수에서 빼주는 수요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지만, 대구 지역 업계에서는 충분치 않다고 봤다. 송원배 대구경북 부동산분석학회 이사는 “대구의 미분양 정책은 서울이나 수도권과는 달라야 한다”며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미분양 문제를 연착륙시키기 위해 구조조정을 인위적으로 늦춰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쟁력 없는 지방 협력업체를 살려준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면서 “지역에서 특화된 경쟁력을 키워줄 수 있는 방향이 장기적으론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경민·심윤지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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