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이 낫다”는 이스라엘 극우 ‘휴전 걸림돌’[시스루 피플]

국가안보장관 벤그비르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이 지난 1월2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정부, 전쟁 방해”
최대 지원국 미국 직격

‘연정 붕괴’ 들먹이며
네타냐후에 강공책 압박
가자지구 재점령 주장
인질 석방 협상도 반대

“조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전쟁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 그는 (가자지구에) 인도적 구호 물자와 연료를 주느라 바쁘다. 우리에겐 트럼프 당선이 낫다.”

이스라엘 내각의 한 장관이 4일(현지시간) 보도된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공개 비판하며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기원했다. 미국의 군사·외교적 지원이 절실한 이스라엘 장관이 현직 미 대통령을 직접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연정 내 대표적 극우파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47)으로, “팔레스타인인 없는 가자지구”를 주장해 이미 유명해진 극우 인사다.

그의 ‘선 넘은’ 발언에 이스라엘 야당 정치인들은 일제히 비판하며 진화에 나섰다. 전시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야당 지도자 베니 간츠 전 국방장관은 벤그비르가 “이스라엘의 전략적 대외 관계, 국가 안보, 전쟁 노력 모두를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반응은 미묘하게 달랐다. 그는 내각회의에서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동맹” 미국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도 “무조건 미국의 요구에 ‘네’라고 답하고 해외에서 칭찬받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권 국가로서 우리는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벤그비르를 징계할 것을 네타냐후 총리에게 촉구했으나 그는 벤그비르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채 “이스라엘과 동맹국의 관계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 발발 전부터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폭력 선동으로 악명을 떨쳐온 벤그비르는 네타냐후 총리를 더 오른쪽으로 몰고 가는 ‘막후 실력자’로 이스라엘 정계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네타냐후 내각의 국가안보장관으로 임명된 벤그비르는 전쟁이 끝나면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해 전 세계로 이주시키고, 그곳에 유대인 정착촌을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 정부의 공개 경고를 받았다. 팔레스타인 땅이 곧 이스라엘 땅이라는 그의 집요한 ‘신념’은 국제사회가 이미 ‘불법’으로 규정한 서안지구 내 정착촌의 유대인들을 무장시키는 것으로 나아갔다.

아랍계 주민에 대한 인종차별 및 폭력 선동, 테러 지지로 2007년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는 벤그비르는 각종 논란에도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번 전쟁은 그의 극우적 주장에 더욱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됐다. 최근 헤브루대학 여론조사에서 이스라엘 응답자의 35%가 ‘가자 합병 및 유대인 정착’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념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하마스 기습 공격 이후 네타냐후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벤그비르가 이끄는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인의 힘)의 원내 의석수 6석을 잃으면 연정 붕괴로 실권하게 된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조기 총선이 열릴 경우 제1여당인 리쿠드당은 현 32석 의석이 19~27석으로 줄어드는 반면, 오츠마 예후디트는 6석에서 8~9석으로 우파 정당 중 유일하게 의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벤그비르도 이 점을 십분 활용해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벤그비르는 최근 휴전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무모한 합의=정부 해체”라는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불과 몇 시간 후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수천명의 테러범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벤그비르는 WSJ 인터뷰에서 자신이 네타냐후 정권을 흔들 수 있는 충분한 지지를 확보했으며, 필요하면 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WSJ는 “네타냐후를 더 오른쪽으로 몰고 가는 선동가가 인질 석방과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의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