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0개 혐의 ‘유죄’에도…대부분 ‘단독 범행’ 판단
“청와대 부탁 받고 직권남용”
3억여원 비자금 조성 ‘유죄’
선고 때 양승태 언급은 없어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김현순·조승우·방윤섭)는 5일 판결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청와대 요청을 받고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법원에서 심리 중인 사건을 검토시킨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지시가 사법부 독립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한 10개 혐의를 대부분 임 전 차장의 ‘단독 범행’이라고 봤다. 법원 안팎에선 사법행정권을 총괄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건 경험과 상식에 반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임 전 차장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을 정지한 서울고등법원 결정의 문제점을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검토시킨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토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청와대로 넘어갔고 이 보고서에 기초해 작성된 노동부의 재항고 이유서가 법원에 제출됐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임 전 차장)이 청와대 비서관의 부탁을 받고 소송 일방 당사자인 정부에 도움을 주고자 행정처 심의관에게 지시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행위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을 수호해야 할 책무에 반하는 것으로 사법부 독립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해하는 범죄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이 청와대 요청을 받고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메르스 사태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 법리를 검토시킨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문건에는 유사 사례 분석을 통해 ‘소 각하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재판부는 “(문건에) 법원에서 진행 중이던 사건에 관해 정부의 대응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피고인의 직권남용이 인정되고 심의관이 준수해야 할 업무준칙에 어긋나 의무 없는 일에도 해당된다”고 했다.
그 밖에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게 헌재에서 심리 중인 사건의 비공개 정보와 자료를 요청한 혐의,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에 대해 제소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유죄로 봤다. 특히 임 전 차장이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주장을 한 판사의 재산관계 특이사항을 검토시킨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특정 법관의 재산 상태를 불법으로 사찰한 것”이라고 했다.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의 예산 3억5000만원을 현금화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일부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총 10개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장기간 법원행정처 주요 보직을 맡아 사법행정 업무 전반을 수행하면서 그 권한을 이용해 앞서 살핀 다수 범죄를 저질렀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은 사법부 독립을 수호하고 재판 독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이나 청와대를 위한 목적으로 이를 이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유죄로 인정한 혐의 대부분을 임 전 차장이 ‘단독’으로 저질렀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 선고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임 전 차장에게 유리한 양형 이유에서도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사법농단이나 재판 거래에 관한 중대한 의혹들은 대부분 실체가 사라진 채 공소장에는 보고서 작성 지시 혐의들만이 주로 남았다”며 “대부분 피고인(임 전 차장)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들이거나 예산에 관한 범행들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법관이 행정부·입법부와 결탁해 정부 정책에 유리한 방향을 제시하고, 특정 정당에 유리하거나 불리하도록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사법적 책임이 고작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양 전 대법원장에 이어 또다시 법관 출신에 대한 ‘제 식구 감싸기’가 반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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