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승계 작업 인정’에도…1심 “합병의 유일한 목적 아냐”

강은 기자 2024. 2. 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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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승계 혐의 ‘이재용 무죄’ 핵심 쟁점과 무죄 판결 왜
무표정 일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주주 손해 끼친 근거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엔 “고의성 단정 못한다”
프로젝트 문건 두고 “검토안”…압수수색 자료엔 “위법”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혐의를 모두 무죄로 선고하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목적이 이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의 승계작업 실체를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번 재판부는 전원합의체가 합병 단계의 각종 불법행위 의혹까지 사실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번 판결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쟁점은 2015년 9월 이뤄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는지, 아니면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이었는지 여부다. 검찰은 2020년 9월 이 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최소비용에 의한 승계 및 지배력 강화’라는 총수의 사익을 위해 미래전략실 지시로 전단적(專斷的) 합병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 측은 합병은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판단이었고,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 “약탈적 승계? 증거 없다”

재판부는 합병 이면에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성 측 주장대로 합병이 경영상 판단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 기각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경영권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했다.

2019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삼성의 승계작업에 대해 “이재용이 최소한의 개인자금을 사용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의결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이라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판시했다. 이 회장이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가 승마하는 활동을 지원한 것을 두고도 “직무와 관련한 이익(승계작업)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앞선 판결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단은 삼성 미전실이 삼성물산 이사회를 배제하거나 이사회에 반해서 승계작업을 추진했다는 판단은 아니었다”면서 “이재용과 미전실이 전단적 결정으로 합병을 했다는 판단도 아니었다”고 했다. 삼성에 승계작업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인정된 것은 맞으나 합병 과정에서 각종 조직적 불법행위가 있었다거나, 이 회장과 미전실이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해를 야기했다는 판단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합병을 추진하는 단계마다 거짓정보 유포, 중요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계열사 삼성증권 PB 조직 동원, 자사주 집중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대주주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 주주를 희생시키는 ‘약탈적 승계’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했다.

■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

재판부는 검찰이 구체적 물증으로 제시한 ‘프로젝트-G’(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자) 문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 보고서’에 불과하다고 봤다. 경영권 승계작업이 해당 문건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진행됐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손해를 일으키는 ‘약탈적 승계’도 이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검찰 주장을 기각한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유지·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종합 검토한 보고서”일 뿐이라고 했다.

이 회장 혐의의 또 다른 줄기인 외부감사법 위반도 무죄로 판단했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제일모직 가치를 고평가하려고 거짓공시·분식회계를 동원했다고 봤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바이오젠 소유) 존재를 숨겨 1조8000억원 상당의 기업 가치를 부풀렸고,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후인 2015년 말에는 임의로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회사 가치를 약 4조5000억원 과다 계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와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얻은 증거는 위법하게 수집된 것이어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혐의사실과 관련 있는 증거만 선별하는 절차 등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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