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승계 혐의’ 삼성 이재용 무죄…법원 “부당합병 증거 부족”
참여연대 “재벌 봐주기 선례”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지 3년5개월 만에 나온 1심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이날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의 선고공판에서 이 회장의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삼성 전현직 임직원들도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 회장에 대해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이 회장은 2015년 최소 비용으로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하며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당시 이 회장은 순환출자를 통해서만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삼성전자 지분을 부친인 고 이건희 전 회장에게서 인수하려면 막대한 상속세를 내야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회장 측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을 약 4% 보유하고 있었고, 이 회장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제일모직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춰 합병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다고 봤다. 이 과정에서 허위 정보 유포,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을 상대로 한 불법 로비 등 각종 불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합병 전후 제일모직 주가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분식회계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장부상 가치를 4조원 이상 부풀린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어 무죄”라고 밝혔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에 대해선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강화 및 삼성그룹 승계만이 이 사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 단정할 수 없고, 이재용과 삼성 미래전략실이 합병을 전단적으로 결정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 회장 19개 혐의 비롯 전현직 임원 모두 무죄
변호인 “적법하다는 점 확인…현명한 판단 감사”
또 “합병 비율이나 시점 등도 삼성물산과 그 주주들에게 부당하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고, 합병 판단에 있어 은폐나 조작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도 회계기준에 따르면 삼성바이오가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을 반드시 공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며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에게 분식회계의 고의가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되었다고 생각한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판결 직후 낸 성명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불법 합병이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한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에도 배치되는 결과”라며 “재벌들은 지배력을 승계하기 위하여 함부로 그룹 회사를 합병해도 된다는 괴이한 선례를 남김으로써, 재벌 봐주기의 대명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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