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한동훈의 선별적 ‘국민 눈높이’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1월19일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 윤석열-한동훈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갈등이 봉합되는 과정에서, ‘국민 눈높이’는 실종되는 것 같다. 한동훈 위원장이 그 이후로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눈높이’에서 본다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은 당연히 진실 규명이 필요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어떤 공무원의 배우자가 명품백을 받았어도 당장 김영란법 위반이 문제가 될 것이다. 하물며 대통령의 배우자가 그런 행태를 보였다면 아무리 비판받아도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한동훈 위원장이 명품백에 대해서는 한때 ‘국민 눈높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은 악법으로 규정했다. 고위검사의 배우자였다가 현재 대통령의 배우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범죄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받아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것이 다수 국민들의 ‘눈높이’이다. 그런데 한동훈 위원장은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서는 수사를 바라지 않는 것 같으니, 그의 ‘국민 눈높이’는 선별적이다.
한동훈 위원장의 선별적 ‘국민 눈높이’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검찰조직 내부에서 일어난 심각한 불법의혹에 대해서도 비호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검찰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불법폐기된 것에 대해 ‘원칙’이니 ‘관행’이니 하는 표현을 쓰면서 비호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작년 6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의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공개되기 시작했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대검찰청의 경우 2017년 4월까지의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폐기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에도 같은 해 5월까지의 자료가 모두 폐기되었다. 심지어 담당 실무자들도 폐기된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자료공개를 위해 밀봉된 서류를 열어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확인한 결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을 포함해서 전국 59개 검찰청에서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가 폐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2000년부터 시행 중인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기록물을 폐기하려면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의 심사와 기록물평가심의회의 심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기록물 폐기는 모두 불법이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야 하는 범죄행위이다. 이런 법 조항들은 과거 광범위하게 이뤄지던 기록물 무단폐기를 근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경우 특수활동비 지출 관련 자료들을 폐기하면서, 공공기록물 폐기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까 명백한 불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불법에 대해 한동훈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서 ‘한 달에 한 번’ 또는 ‘두 달에 한 번’ 특수활동비 자료를 폐기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사 출신인 한동훈 위원장이 ‘불법의 관행’은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렇게 따지면 한동훈 위원장이 수사해서 기소했던 기업과 공공기관의 불법들도 그들에게는 ‘관행’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는 물론 공무원의 눈높이에서 보더라도, 특수활동비를 마음대로 쓰고 자료를 불법 폐기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이다. 대한민국의 어느 공공기관도 이런 식으로 자료를 불법 폐기하지 않는다.
한동훈 위원장도 대한민국 헌법 11조를 잘 알 것이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1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2항).
이런 헌법정신에 따르면, 대통령의 배우자든 검찰조직의 구성원이든 불법을 저질렀으면 수사받고 처벌받아야 한다. 그래야 ‘법 앞의 평등’이 실현된다. 반면 힘있는 자들의 불법을 비호하는 것은 특권집단을 인정하는 것이며, 헌법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행위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제 대통령의 부하도 아니고 검찰조직의 구성원도 아니다. 그는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여당 대표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지위를 자각하고 지금이라도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국민 눈높이’를 회복하길 바란다. 그 시작은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혐의와 검찰조직 내부에서 이뤄진 불법 혐의에 대해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특별검사 도입 등에 협조하는 것이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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