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결심' 이재명, 尹심판 野 단일대오 한 석보다 중요했다
병립형 회귀 시사, 두 달 만에 원점
민주·시민사회 세력 한 울타리 포석
통합비례정당, 꼼수 위성정당 논란
"반칙 못 막아 불가피" 사과만 9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10 총선에서 현행 준연동형제를 유지하는 대신 민주 진보 진영을 아우르는 '통합형 비례정당'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정치개혁의 '명분'을 지키는 동시에 윤석열 심판론으로 야권 단일대오 구도를 만들어 '절반의 실리'를 챙기려는 고육책이다.
다만 '표의 등가성'이라는 연동형제 취지를 훼손하는 '준(準)위성정당'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꼼수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동형제 반대를 고수한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위성정당 창당 절차에 착수했다. 22대 총선에서도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이 공식화하면서, 이들의 폐해를 막기 위한 '룰'은 또다시 뒷걸음질치게 됐다.
尹 심판할 '우군' 확보, '현금' 대신 '어음' 택한 이재명
이 대표는 5일 광주 국립5·18 민주묘지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서 "준연동제는 불완전하지만 소중한 한걸음"이라며 준연동형제 유지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회귀를 시사한 이 대표지만, 두 달여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병립형 회귀 시, 의석 확보에 유리하다는 게 그간 민주당 지도부 판단이었다. 실제 "다리를 불사른 결단"이라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올 정도로, 한 석이 아쉬운 이 대표 입장에서 연동형 유지로 방향을 튼 배경에는 그 이상의 절박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총선 승리를 위해 윤석열 정부 심판론 구도를 선명히 해야 하는 이 대표에게 '야권 단일대오'는 무너뜨릴 수 없는 전략적 선택지였다. 연동형 사수를 촉구한 민주당 바깥의 진보 정당과 야권 시민사회 요구를 이 대표가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다. 전날 이 대표를 만난 문재인 전 대통령도 민주당과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제3의 세력과 연대 필요성을 언급하며 연동형제 '엄호'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권 위임, 주말 사이 나홀로 숙고... 전날 밤 칼 빼들어
이 대표 결단은 전날 밤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권을 위임받은 이 대표는 주말 동안 장고 끝에 연동형제 유지로 결심을 세웠다고 한다. 당 대표실 관계자는 "양쪽의 객관적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한번 결단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이재명식 의사결정 스타일"이라 설명했다. 민주당은 의원총회 등 내부 절차를 거쳐 준연동형제 유지를 추인할 방침이다.
연동형제를 주장해온 우원식 의원은 "병립형으로 비례의석을 많이 얻는 건 눈앞에 보이는 '현금'이지만, 야권 시민세력과 연합해서 지역구 의석을 많이 확보한다면 윤석열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어음'은 더 많아지는 것"이라 평가했다. 이 대표 역시 "지역구 포함 비례선거까지 협력하는 민주개혁선거대연합을 통해 마지막 단 한 표까지 끌어올려 멋지게 이기겠다"고 강조했다.
"내가 책임진다" 위성정당 비판에 9번 고개 숙인 이재명
약속은 지켰지만, 위성정당 논란은 피하기 어려운 과제다. 이 대표는 당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설득과 사과에 공을 들였다. 이날도 "반칙을 막아설 방법이 없다. 저쪽에선 칼을 들고 덤비는데 최소한 냄비뚜껑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위성정당 창당의 불가피성을 "정당방위"라고 역설하며 정면돌파에 나섰다. 기자회견과 백브리핑(현장 질의응답) 동안 총 9번이나 대국민 사과의 뜻도 밝혔다. 사과 메시지는 이 대표가 현장에서 추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합형 비례정당을 두고 소수정당을 배제하지 않고, 다양성을 지향하는 연합 플랫폼이라고 설명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란 표현에도 빗댔다. 다만 이 대표는 "범야권 맏형으로 책임에 맞는 권한을 갖겠다"고 거듭 밝히며 민주당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과 기존 여야 정당에서 탈당한 신당 세력들은 이 대표의 결정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논리적 근거도 없는 제도"라고 비판하며 병립형 회귀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도 "정치 양극화의 폐해를 극대화하는 망국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다만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물리적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하려는 것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광주 우태경 기자 taek0ng@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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