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 명품백, 선거제, 그리고 리더십
두 정치 지도자가 자신의 실책을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지도자가 먼저 준연동형 선거제 발표로 악몽 탈출을 시도했다. 다른 지도자도 곧 현안에 관한 입장 표명을 계기로 수렁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들은 과연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멋진 무언가를 덜컥 받은 일로 궁지에 몰린 두 지도자,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걸 왜 자꾸 사오세요” 하고 빈말로 끝냈다 해도 나중에 돌려주라고 했으면 하고 후회할 것이다. 대선 때 참모들이 제안한 ‘비례 확대(연동형) 선거제’ 공약을 받지 않았더라면, 받아도 “평생 꿈”이라거나 “내가 대통령 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라는 따위의, 마음에도 없고 물리기도 어려운 말을 함부로 해서 여지를 없애버리지만 않았더라면 하고 자책할 것이다.
명품백 받은 사실이 드러나고,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철석같던 연동형 선거제 약속을 뒤집어 여론이 악화됐을 때 뭔가를 해야 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즉각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해야 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은 실수가 아니라 실수를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닥친 문제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를 피할 궁리만 했다. 사과와 재발방지책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일을 역공세와 변명으로 일관했다. 연동형 공약을 파기할 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두 사람은 국면 전환도 못하고, 리더십 훼손도 막지 못했다. 어영부영, 우물쭈물하다 일을 더 키웠다. 한쪽에서는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 친윤과 비윤 간 사과하라 말라, 사퇴하라 말라 소동 피우고, 다른 쪽에서는 연동형파 대 병립형파, 친명 대 비명으로 갈려 싸움을 했다.
이렇게 나라 전체가 불안과 혼란으로 술렁대자 시민은 명품백, 선거제 문제가 아니라, 두 지도자에게 맡겨진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시선을 돌렸다. 사태 발생 초기 수준의 수습책으로는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근본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걸 모르고 한 사람은 자신이 통제하는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해명인지 사과인지 하겠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선거제 내용은 물론 선거제 결정 방법·시기도 정하지 못하고 헤맨 끝에 준연동형으로 결정했다.
두 사람은 이미 때를 놓쳤다. 시민의 시선은 명품백 사과 너머에 있다. 용산 참모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하면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므로 사과 불가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명품백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 난맥, 실정, 무능의 상징이 되었다. 시민은 사과로 국정이 달라질지 궁금해한다. 이 궁금증에 답하지 않는 한 명품백은 잊힐 수 없다. 용산 참모들의 불길한 예언대로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것이다.
전 당원 투표에 의한 선거제 결정이라는 최악의 길로 들어섰다가 다시 돌아 나온 이재명 또한 윤석열보다 나을 게 없다. 선거제 논란은 이재명 리더십을 대표한다. 선거제 쟁점을 다루는 이재명의 정치 역량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연동형이니, 병립형이니 하는 것은 명품백 사과와 마찬가지로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선거제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이상적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한 두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이재명의 정치적 생존 도구로 전락한 민주당이 총선 승리 이후 시대 과제를 담지한, 비전 있는 공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당원과 지지자들은 어떤 선거제든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자신의 선택을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무책임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등 떠밀려 강요된 선택을 하는 처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긴급 기자회견은 지도자의 고독한 결단이 주는 긴장감, 그것이 발산하는 창발적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예상대로 ‘이재명 민주당’ 변화에 관한 신뢰성 있는 약속도 없었다. 국정을 바꿀 의사가 없는 윤석열 사과가 무의미하듯, ‘이재명 민주당’을 환골탈태할 전망이 없는 선거제 발표는 공허하다.
두 지도자 발목을 잡는 것은 명품백도 선거제도 아닌, 그 자신의 리더십이다. 우리가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지도자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설명할 수 있고, 결과에 책임을 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대근 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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