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겸손과 학업성취

기자 2024. 2. 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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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처음으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한민국 대표단 인솔책임자인 부단장직을 맡게 되었을 때 한 교수가 나에게 ‘대표학생들이 매우 건방지고 이기적이니 조심하라’고 경고를 주었다. 그러나 웬걸, 막상 대표학생들과 같이 지내보니 학생들이 너무나 착하고 겸손한 것 아닌가? 그 이후로 지금까지 30년간 수많은 최고 수학영재들을 지도해왔는데 그들은 대부분 아주 착하고 남들을 존중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수학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선수들은 수학에서 대충 10만명 중 한 명 정도의 성취를 이룬 학생들이다. 이렇게 최고의 학업성취를 이룬 학생들을 지도하고 관찰하면서 내가 찾은 키워드는 바로 ‘겸손’이다. 시험 성적이 우수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흔히 ‘수재’라고 부른다. 탁월한 수재를 보면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머리가 좋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지능을 타고나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니 말이다. 하지만 영재를 지도해본 사람들은 타고난 지능 외에도 학습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정서적인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 안다.

좋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 영재가 모두 탁월한 수재가 되지는 않는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에게 그 재능만 잘 살려주면 알아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영재들에게는 정서적 안정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결국 그것이 결국 아이들의 재능을 살리는 길로 이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겸손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정서적 안정, 끈기, 정신적 맷집, 책임감, 경쟁심, 인내심, 사회성, 자기반성 등 실력자로서 성공하는 데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과 모두 연결되기 때문이다.

탁월한 수재는 대개 단순히 드러나는 태도만 겸손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가 나보다 낫다’라며 남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성품을 가지고 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우쭐대는 심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좋은 성취를 거두기가 어렵다.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학습 동기는 바로 ‘경쟁심’이다. 그런데 이것이 ‘건전한 경쟁심’이어야 한다. 자기보다 더 잘하는 학생들에 대해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학생들은 심리적인 부담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거나 경쟁을 회피하게 될 수 있다.

머리가 좋고 집중력도 좋지만 끈기나 인내심이 부족한 아이도 있다.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끈기와 인내심을 키울 수 있다. 한편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대개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보니 패배와 좌절의 아픔이 더 큰 편이다. 그런데 겸손은 그런 패배의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이러한 힘을 정신적 맷집이라고 부르자. 이것을 다른 말로 회복탄력성(resilience), 복원력, 정신적 면역력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겸손이 성인들에게도 필요한 덕목임은 당연하다.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만이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직시하고 메우려는 노력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남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남들을 존중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도 높고 행복지수도 높은 법이다. 이미 성공한 지식인, 법조인, 정치인, 의사 등도 스스로 오만해지는 것을 경계하여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겸손에 주목해주기를 바란다. 타고난 성품과 가정환경 덕분에 자연스럽게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 아이들도 있지만 대다수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훈육이 필요하다. 훈육은 칭찬하기, 선긋기, 야단치기의 3요소로 이루어진다. 적절한 칭찬과 엄격한 선긋기는 야단치기보다 더 중요하고 어렵다. 칭찬은 자주 해주는 것이 좋지만 “너는 천재야” “너는 뭐든지 잘해”와 같은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좋지 않을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은 뭐든지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고 남들보다 못하게 되면 핑계를 대거나 그것을 회피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긋기는 가능하면 남들에게 결례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 위주로 하는 것이 아이의 겸손과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야단치기에는 세 가지 원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관성 지키기, 화를 내지 않기, 짧은 시간 동안 야단치기이다. 버럭 화를 낸다거나 막말을 내뱉는 것은 최악이다.

아이를 예쁘게 키우면 결국 훌륭한 성인이 될 것이라고 여기고 훈육은 등한시하는 부모들도 있다. 아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니다. 아이는 부모가 노력해서 다듬어주어야 좋은 성품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부모들이 가져주면 좋겠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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