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12·12 반란군 맞선 고 정선엽 병장 유족에 국가 배상 판결

이혜리 기자 2024. 2. 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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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2일 광주 북구 동신고등학교에서 열린 고 정선엽 병장 44주년 추모식에서 고인의 동생 정규상씨가 추모하고 있다. 정 병장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직후인 1979년 12월 13일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연결하는 지하 벙커에서 1공수여단 소속 반란군의 총탄에 숨졌다. 연합뉴스

법원이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의 총탄에 숨진 고 정선엽(사망 당시 23세) 병장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5일 판결했다.

이날 홍주현 서울중앙지법 민사202단독 판사는 정 병장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서 “유족 1인당 2000만원씩 총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홍 판사는 “망인은 국방부 B-2 벙커에서 근무하던 중 반란군의 무장해제에 대항하다 살해됐다”며 “전사임에도 국가는 계엄군 오인에 의한 총기 사망사고라며 순직으로 처리해 망인의 사망을 왜곡하고 은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망인의 생명과 자유, 유족들의 명예 감정이나 법적 처우에 관한 이해관계 등이 침해됐음이 명백하다”며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유족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헌병으로 복무하던 정 병장은 제대를 3개월 앞둔 1979년 12월13일 새벽 지하 벙커에서 초병 근무 중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지난해 3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정 병장이 반란군에 저항하다 총격으로 숨진 것으로 결론 내렸다. 국방부는 이를 인정해 정 병장의 사망 구분을 ‘순직’에서 ‘전사’로 바꿨다. 12·12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에 이같은 사망 과정이 담겼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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