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 차가운 겨울이 그리운 설원의 눈물
유럽과 북미처럼은 아니지만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진행되면 한국도 쌓인 눈을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설원의 눈물’은 기후변화를 막아달라고 설원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설원의 눈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주말을 맞아 아들과 스키장에 다녀왔다. 숨 막혔던 일상에서 탈출하듯이 빠져나와 하얀 설원 위에 서 있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이곳 설원 위에 몸을 맡긴 대다수 사람이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리프트를 타고 능선을 오르는 순간 흔치 않은 광경을 발견했다. 깊은 계곡 사이로 눈이 녹아 시내가 되어 흘러내려 가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능선에 쌓여 있어야 할 눈이 녹아내린 것이다.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았기에 다소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사실 크게 놀라운 광경은 아니다.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는 전 지구의 겨울 기온을 끌어올리고 있으며 이곳 강원도의 산골짜기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본능으로 데이터를 살펴보니 스키장이 있는 이곳 평창의 겨울철 낮 기온은 연간 약 0.1도 즉 10년에 약 1도 이상 증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유럽 및 북미 지역에서는 스노팩(snowpack)의 감소가 심각한 사회·환경·경제·정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스노팩이란 하늘에서 눈이 내려 땅에 쌓여 있는 것을 말하는데 날이 추우면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매번 새로운 눈이 내릴 때마다 켜켜이 쌓여 더 두꺼워진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눈이 내리지 않거나 날이 따뜻해 내린 눈이 금방 녹으면 스노팩의 두께가 얇아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럽과 북미에서는 스노팩의 두께가 줄어드는 것을 왜 심각한 문제로 여기는 것일까? 사람들이 스키를 타지 못하게 될까 걱정돼 그런 것일까?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사실이지만 스노팩의 감소는 스키라는 인간의 레크리에이션을 넘어 지구시스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사라진 눈이 또 다른 기후변화를 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흔히 스키장이 있는 지역은 전 세계 어느 곳이나 기온이 낮다. 그건 바로 알베도(albedo) 즉 지면반사효과 때문이다. 눈처럼 표면이 하얀색인 물질은 보통 반사율이 높다. 태양에서 들어오는 빛을 많이 반사하기 때문에 지표면으로 들어오는 에너지 자체가 작다. 그래서 눈으로 덮여 있는 북반구 고위도 지역이나 고도가 높은 산에서는 태양에서 들어오는 에너지를 적게 흡수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눈이 없는 지역에 비해 지표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는 에너지가 적어 기온이 낮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추운 곳에 스키장을 만들면 슬로프의 하얀 눈이 태양 빛을 반사해서 주위를 더 춥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눈이 줄어들면 어떻게 될까? 기온이 올라가 눈이 녹기 시작하면 눈이 많이 덮여 있을 때보다 지표면이 태양 빛을 더 많이 흡수할 수 있기 때문에 주위가 따뜻해진다. 정리하면 온난화로 눈이 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녹은 눈이 다시 온난화로 이어지는 양의 피드백(되먹임)이 걸려 그 지역이 더 따뜻해지는 것이다.
스노팩 감소 땐 생물다양성 위협
스노팩이 감소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생물다양성의 위협이다. 눈이 사라지는 것과 생물다양성은 다소 동떨어진 문제처럼 보이지만 아주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 눈은 추운 겨울 땅이 식지 않게 도와주는 담요 역할을 한다. 보통 우리가 한겨울에 담요를 몸에 걸치고 있을 때 따뜻한 이유는 담요가 열을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체온에 의한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눈이 두껍게 덮여 있는 지역에서는 오히려 눈 위 공기보다 땅속 기온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혹한의 바람이 매섭게 불어도 땅속은 따뜻한 온실 같은 것이다. 이렇게 눈 아래 땅속이 따뜻하면 매서운 추위의 칼바람이 불어 나무를 공격하더라도 뿌리는 안전하게 보호되어 나무가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눈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포유류 같은 경우 눈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스노팩이 줄어드는 지역은 빈번한 산불이 발생하여 생태계 전체의 구조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지금까지 열거한 사실만으로도 생물다양성에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생태계서비스 관점에서 인간이 스노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수자원 확보와 관련이 있다. 언젠가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이 눈을 모아서 식수로 쓰는 장면이 나왔다. 사실 한국은 눈을 수자원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기에 이렇게 방송에서나마 흥미로운 장면으로 보게 되지만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의 스노팩은 수자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장 내년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수, 산업에 제공할 산업용수, 농사에 이용할 농업용수의 확보를 위해서 올해 겨울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리고 쌓이는가가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스노팩을 통한 수자원의 확보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가장 경제규모가 큰 캘리포니아는 현재 심각한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특히 수자원의 주요 공급원인 스노팩의 감소가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그중 한 예가 산불이다. 도시 하나를 집어삼킨 산불이 발생했지만 스노팩의 감소로 인해 하천, 호수, 지하수의 양이 줄어들면서 불을 끌 수 있는 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토에 갇혔던 온실가스도 큰 문제
1960년대 후반부터 하늘 위에서 지구의 눈 덮임을 모니터링한 인공위성 자료를 보면 북반구 지역 눈의 양은 감소하고 있다. 만년설인 지역이 사라질 뿐 아니라 현재 지구 면적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계절성 눈 지역 한국과 같이 겨울에 눈이 내리는 지역에서의 적설량 또한 줄고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스노팩의 감소도 충분히 심각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전망을 보면 더 암울하다. 아주 일부 추워지는 지역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지구는 따뜻해지고 있다. 특히 겨울은 더욱 그렇다. 공기가 따뜻해지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젖은 눈이나 비의 형태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유럽의 연구에 따르면 2100년까지 알프스의 눈 70%가 사라질 것이라 보고되었다. 여기서 일부 사람들은 알프스에 눈이 녹아서 나무가 더 잘 자라고 식생의 면적이 늘어나면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틀린 얘기다.
알프스처럼 거의 만년설로 덮여 있는 지역은 땅도 거의 얼어 있다. 바로 동토층이다. 북반구 고위도에만 동토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티베트나, 알프스처럼 고도가 높은 지역은 땅이 얼어 있기에 동토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녹은 지역에서 나무와 풀 같은 식생 활동만 활발해지면 좋겠지만 동토가 녹으면 그동안 동토에 갇혀 있던 온실가스들이 공기 중으로 빠져나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메탄의 농도를 높일 수 있다. 그건 화석연료를 태워서 나오는 온실가스와 달라 인간이 통제할 수 없기에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기후변화를 가속화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다. 기후변화 관점을 넘어 앞에서 언급했던 눈의 중요성을 살펴볼 때 알프스의 눈 70%가 사라진다면 분명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알프스의 스노팩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식수난, 아름다운 알프스산의 나무, 동물들 많은 것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칠 것이다.
물론 유럽과 북미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기후변화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한국 또한 쌓여 있는 눈을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뜨거워진 겨울은 다시 차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아름다운 설원을 다시 못 볼 것이 자명하다. 어쩌면 내가 목격한 깊은 계곡의 시내는 차가운 겨울이 그리운 설원의 눈물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눈물은 기후변화를 막아달라고 설원이 우리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설원의 눈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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