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합병 의혹' 이재용 1심 무죄…"범죄사실 증명 없어"(종합2보)
법원 "프로젝트-G, 승계 문건 아냐…증거도 없어"
"경영안정, 주주에게도 이익…합병 부당치 않아"
거짓공시·분식회계 무죄…대부분 증거부족 사유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부당합병' 의혹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과 함께 기소돼 수년간 재판을 받아온 삼성전자 전·현직 임직원에게도 나란히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은 이른바 '프로젝트-G' 문건이 이 회장의 사전 승계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검찰의 기소 전제 자체를 부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5일 오후 2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 등에게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13명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 등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지난 2020년 9월 기소됐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부회장을 맡았던 당시 경영권 승계와 그룹 내 지배력 강화를 위해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위법하게 관여했다는 게 공소사실 골자다.
검찰이 문제 삼은 것은 양사 합병 추진 단계에서 발표한 삼성물산 주식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라는 합병 비율이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주식만 보유했는데, 그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 모직 주식을 삼성물산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면서 이득을 몰아줬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2012년 12월 이 회장이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승진하던 시기 완성된 '프로젝트-G'라는 문건에 따라 회사가 승계 계획을 사전에 완성했고, 이에 따라 이 회장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합병 작업을 실행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법원은 프로젝트-G 문건이 승계를 목적으로 작성됐다는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 승계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미전실이 주주 측 손해를 감수하고 시도한 약탈적 불법 합병이라는 기소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재판부는 "해당 문건은 미전실이 검토해 온 다양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과 관련해 그룹의 지배 강화를 검토한 종합보고서일 뿐"이라며 "대주주 이익을 위해 주주들을 희생시키는 승계 문건이라 보기 어렵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용과 미전실이 합병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고 볼 수 없으며, 합병은 양사 합병 필요성 검토 등을 거쳐 의결을 통해 추진된 것"이라며 "결국 이재용 피고인의 경영권 강화, 승계만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미전실은 프로젝트-G 문건을 통해 '일감 몰아주기' 이슈를 해소하기 위한 유력한 방안을 검토했고 효과적인 방안을 추진했다"며 "경영권 안정화는 주주에게도 이익이 된 측면이 있어 지배력 강화를 위한 목적이 수반됐다 하더라도 합병 목적을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 측이 주장하는 의혹에 대해 재판부는 대부분 '증거가 부족하다'는 사유를 들었는데, 이 회장 등이 합병 목적과 경과·합병비율 등에 관한 공시를 허위로 알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를 들었다.
합병을 추진하던 두 회사 모두 상장기업이었던 점에서 주가를 비롯한 주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원활했고, 이 같은 정보가 시장에 원활히 유통되고 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짓기재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거짓 공시, 분식회계 의혹도 무죄로 판단했다.
이는 이 회장 등이 '불법승계'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로직스 관련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다. 검찰은 로직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채를 감춰 분식회계를 했다고 의심했다.
검찰은 회계상 부채로 처리돼야 하는 바이오젠에 대한 콜옵션 보유 사실이 빠져있었던 점을 근거로 들었는데, 재판부는 "바이오젠의 콜옵션은 실질적 권리가 아니며 반드시 공지돼야 하는 정보로 인정하기 어렵다"며 "분식회계 혐의도 올바른 회계처리를 한 것으로 보여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양사 합병 비율에 따라 약 4조원의 차액이 발생했다고 추정하면서 이 회장에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검사가 주장하는 손해는 '추상적 가능성'에 불과하다"며 "그 자체로 배임의 손해가 될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의 위법한 증거수집에 대해서도 그 능력을 부정했다. 검찰은 2019년 로직스와 에피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다량의 서버·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해 증거로 제출했는데, 혐의 사실과 무관한 부분을 선별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전자정보가 임의제출된 경우에도 수사기관은 범죄 혐의사실과 무관한 정보의 임의 복제 등을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증거는 위법하기에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회장 등의 재판은 검찰 측 수사기록만 19만여쪽, 증거목록은 책 네 권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진행된 재판만 106회에 달한다. 이 회장은 해외 출장 등으로 일부 재판에 불출석했지만 대부분 공판에 출석했다.
이날 판결은 검찰의 기소 약 3년5개월여만에 나온 결과로, 서울중앙지법 서관 417호 대법정에서 약 1시간동안 진행됐다.
검정 정장에 푸른 패턴이 들어간 넥타이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한 이 회장은 선고가 진행되는 내내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했다. 입·퇴정길 심경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날 선고에 검찰은 법리적 판단을 검토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편 이 회장은 '국정농단' 혐의로 실형을 확정받은 후 지난해 7월29일 형기가 만료됐다. 그는 5년간의 취업제한 조치 등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던 중 같은 해 8월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사면·복권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hummingbird@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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