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권한없다’며 또 무죄···‘사회적 형벌’ 받았다며 집유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사건을 심리한 1심 법원은 5일 판결에서 재판 개입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임 전 차장의 10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김현순·조승우·방윤섭)는 이날 임 전 차장 판결에서 “사법행정권의 범위에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포함돼있지 않다”며 재판 개입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권’이 있어야 하는데 임 전 차장과 같은 사법행정권자에게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애초에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성근 전 판사 등 사건에서 재판부들이 재판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무죄를 선고한 근거인 ‘권한 없이 남용 없다’ 논리가 임 전 차장 판결에서도 반복됐다.
이에 따라 임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을 심리하던 재판부에 의견을 전달한 혐의, 부산고등법원에 비위 의혹 법관이 연루된 사건 선고를 미뤄달라고 요청한 혐의가 모두 무죄가 됐다. 임 전 판사와 공모해 가토 타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을 심리하던 재판부에 선고문과 판결이유 수정을 요청한 혐의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상당수의 재판 개입 혐의들에 대해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은 채 검찰이 주장한 공소사실 행위의 형태가 재판 개입이면 ‘재판 개입 직권이 없다’ 논리로 바로 무죄 결론을 냈다.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의 본질은 모두 재판의 실체형성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로 이는 재판에 재판부 이외의 사람이 관여하는 것으로써 재판관여행위에 해당한다”며 “재판권에는 사법행정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므로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무죄를 선고한다”고 하는 식이다.
재판 개입 무죄라는 법원 “도덕적 책임 아니라 법적으로 죄 되는지만 판단”
시민사회단체들은 ‘제 식구 감싸기식 형식논리’라며 법원 판단을 비판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이날 판결 선고에서 “특정인을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법 감정에 맞지 않다고 하여 (사법행정권자가) 일선 법원의 개별 사건에 개입할 수 있다고 무리하게 해석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을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선고에 앞서서도 재판부는 “사법부 고위직으로서의 도덕적·정치적 책임 유무가 아니라 오로지 법적인 측면에서 죄가 되는지만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유죄 인정을 두고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이나 청와대를 위한 목적에 이를 이용했다”며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사법농단 핵심으로 지목돼 오랜 기간 동안 대내외적으로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됐다”며 “7년 가까운 긴 기간 동안 본 소송만으로도 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유죄로 판명된 범죄보다 몇 배나 더 많았던 범행들에 관한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만 했던 일종의 사회적인 형벌을 받았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402051650001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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