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도 아닌 넘버3 ‘단독 범행’ 결론…재판개입 혐의는 다 무죄
양승태 이름 한 번도 언급 안 돼
법원, 기소된 법관들 감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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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첫 전직 대법원장 구속, 법관 탄핵 등 큰 파장을 낳았던 ‘사법농단’ 사태가 7년 만에 사법행정 1·2인자와 무관한 ‘3인자의 단독 행동’이라는 1차 결론이 나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 재판부는 핵심 혐의였던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실체가 없다’는 강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무죄 선고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재판부가 ‘위법소지가 있다’고 밝힌 임 전 차장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봤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재판장 김현순)는 선고 내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름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은 공소장에 양 전 대법원장을 94번 언급하며 공모 관계를 적시했지만 재판부는 “대부분 피고인이 단독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판단했다. 지난달 26일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양 전 대법원장(2702번)보다 임 전 차장(4507번)을 더 많이 언급하며 ‘주범’으로 간주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재판개입 직권 없어서 남용도 없다는 논리 반복
가장 엄중한 혐의로 꼽힌 재판개입 관련 혐의는 단 한 건도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어서 남용할 수 없다’는 사법농단 재판에서의 무죄 논리가 반복됐다. 대표적인 재판개입 사례로 알려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재상고심 관여 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청와대-외교부-김앤장법률사무소(일본 기업 쪽 대리)와의 협의 채널을 가동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외교부 의견 반영 검토는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며 “재판 독립을 침해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힌 임 전 차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인사모 활동 위축 방안 검토 행위(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는 업무 범위 내의 행위”라며 무죄 판단했다.
불법 행위로 인정한 혐의에 대해선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라며 위법성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정운호 게이트' 연루 법관들에 대한 검찰 수사 확대에 대비하기 위해 이들 법관과 가족들의 개인정보를 영장전담판사들에게 제공한 행위의 개인정보 누설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목적이 정당하고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며 무죄로 봤다.
임 전 차장에게 유죄가 인정된 혐의는 대부분 ‘박근혜 청와대’나 특정 정치인에 법률 자문을 제공한 행위들이다. 법적 판단을 내려야 할 사법부 일원인데 소송의 일방 당사자인 정부나 형사 사건 당사자인 국회의원을 돕는다고 나서면서 직권남용 죄를 범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2014년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에서 고용노동부의 재항고이유서를 첨삭해준 혐의와 2015년 메르스 사태 대처 실패로 궁지에 몰린 박근혜 정부에게 국가배상 소송 대응 법리를 제공한 혐의가 대표적이다. 홍일표 당시 새누리당 의원과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에게 형사사건 관련 법률자문을 검토하게 한 혐의와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의원 지위를 상실시킬 방안을 검토하게 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범죄보다 더 많은 혐의로 사회적 형벌 받았다”는 법원
이날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양형이유를 밝히며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비판과 기소된 법관들에 대한 온정을 담았다.
재판부는 “재판거래 관련 중대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들이 투입돼 300쪽이 넘는 공소사실로 정리되는 동안 대부분 실체가 사라져 ‘재판거래 의도로 부적절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는 취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만 주로 남았다”고 검찰 수사를 비판한 뒤 “피고인은 수사 초기부터 사법농단 핵심으로 지목돼 오랜 기간 대내외적 비난의 대상이 됐고, 유죄로 판명된 범죄보다 몇 배나 더 많았던 혐의를 벗으며 일종의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직접적인 재판개입과 연결된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라며 “특히 ‘정운호 게이트' 때 비위 의혹 법관과 가족들의 개인정보를 영장전담 재판부에 전달한 것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면서도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논리는 황당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강제동원 등 직접적인 재판개입의 큰 갈래는 인정되지 않았지만, 국회의원 사건 관련 재판 전략 수립 등 일부 재판에 관여한 혐의는 인정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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