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분쟁 해결해달라"···중기부에 'SOS' 역대 최다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더 많아"
소송 수 년 걸리고 비용 눈덩이
영세기업 위한 제도적 지원 시급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을 둘러싼 기업간 분쟁 사례가 해마다 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에 공식 접수된 기업 분쟁 사건이 집계 시작 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중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법적 절차에 들어서거나 분쟁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포함하면 실제 분쟁 사례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산업계의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다른 기업과 협업할 때 비밀유지계약(NDA)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분쟁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물론 절대 열세일 수 밖에 없는 스타트업 등 소규모 기업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5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기부가 접수한 기술 분쟁 사례는 50건으로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19년 이래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기부는 기술 탈취 등 피해를 주장하는 기업으로부터 사건 접수를 받아 조정·중재·행정조사 등 준사법·행정 처분을 내린다. 중소기업이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통상 2∼3년의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은 점을 고려해 도입한 조정·중재는 2015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당사자 간 합의를 유도하는 조정은 재판상 화해의 효력을, 특정 처분을 내리는 중재는 법원의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
중기부에 접수되는 기술 분쟁 사레는 확연한 증가 추세다. 조정·중재·행정조사를 모두 합친 사례는 △2019년 35건 △2020년 46건 △2021년 42건 △2022년 37건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 50건으로 뛰어올랐다. 준사법 처분인 조정·중재도 △2019년 21건 △2020년 30건 △2021년 25건 △2022년 24건 등 과거 30건을 넘기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는 33건을 기록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분쟁 사건을 공식 접수하지 않고 관련 문의만 하는 경우도 있다”며 ”실제 분쟁 사례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는 기술 분쟁을 겪는 기업들이 관련 사실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분쟁 기업으로 언급되는 것이 추후 사업 전개에 불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플랫폼 서비스를 개발해 유수 벤처캐피털(VC)로부터 몇 단계에 걸쳐 투자를 받은 A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A사는 사업 확장 과정에서 국내 유수의 대기업과 협업했지만, 이 과정에서 기술과 사업 아이디어 유출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발을 뺐다. A사 대표는 “기술 유출이 분쟁까지 가는 것이 드물고, 분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더 드물다”며 “우리 이름과 대기업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공론화된 사건을 살펴보면 전국 단위 사업을 펼치는 유망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분쟁을 겪는 경우가 많다. 왓챠와 LG유플러스(032640), 티오더와 KT(030200) 사이 벌어지고 있는 분쟁이 대표적이다. 왓챠는 유플러스가 인수합병(M&A)을 명목으로 기업을 실사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등 기술을 파악했고, 이후 유사한 자체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주장한다. 티오더는 사업 협업 과정에서 공개한 사업 노하우와 기술을 활용해 KT가 자체 서비스를 출시했다는 입장이다. 왓챠는 유플러스를 중기부에 신고했고 티오더는 KT 법인과 전현직 임원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기술 분쟁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피소 기업에 대한 섣부른 단정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LG유플러스는 사안의 핵심 쟁점인 ‘기술 활용’에 대해 “LG유플러스는 기업 실사 과정에서 왓챠로부터 알고리즘 등 기술을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KT는 “제휴 논의 과정에서 서로의 니즈가 맞지 않아 다른 협업 대상을 정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투자회사 대표는 “사업 협업이나 M&A 과정에서 대기업은 상대 기업의 기술, 사업 노하우를 파악하게 된다”며 “파악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이후 자체 서비스 출시 과정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쟁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법적 장치를 강구해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박희경 재단법인 경청 변호사는 “NDA 계약 시 위약금, 위약벌 등 손해배상에 대한 조항을 사전에 추가해야 한다”며 "협업의 구체적인 목적, 전달한 자료의 경제적 가치성, 영업 기밀이라는 사실 등을 구체적으로 계약서에 명시해야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티나게 팔린다'…中서 난리 난 '고추 커피', 대체 맛이 어떻길래?
- “자녀 출산하면 1억, 셋 낳으면 집 제공”…부영 ‘출산 복지’ 파격
- '조상님 올해 사과는 못 올릴 거 같아요'…달달하지 않은 과일 가격에 '한숨'
- '많이 먹어도 살 안 쪄'…설현처럼 살 쭉쭉 빠지는데 근육까지 만들어주는 '클라이밍'
- 사람 죽었는데 강아지 안고 '멀뚱'…음주운전 '강남 벤츠女'에 공분
- [선데이 머니카페] 인도 주식이 뜬다는데, 한국인은 못 사네
- 이해찬 '국회의원 해보겠다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안돼'
- 고령화에 의료비 폭증…지역의료발전기금, 해법되나[박홍용의 토킹보건]
- 한동훈 “목련 피는 봄 오면 김포는 서울 될 수 있을 것”
- 文 '책방정치'로 尹 비판 '독도 지킬 때 진정한 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