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레고리 펙' 남궁원 지병으로 별세

2024. 2. 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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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 전 헤럴드 명예회장)이 5일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5일 고인의 유족 측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영화배우 남궁원 씨가 5일 오후 3시 53분에 별세했다. 장례는 평소 가족을 중시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른다"고 밝혔다.

영화계 원로로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고인은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1978~1984),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1991~1997),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이사(1992~1995)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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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헤럴드 명예회장 90세 나이로 타계
고인에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원로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 전 헤럴드 명예회장)이 5일 9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5일 고인의 유족 측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영화배우 남궁원 씨가 5일 오후 3시 53분에 별세했다. 장례는 평소 가족을 중시했던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른다"고 밝혔다.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오랜 기간 폐암으로 투병을 해왔다.

193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난 고인은 24살이던 1958년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그레고리 펙을 닮은 서구적인 외모 덕분에 일찌감치 영화배우 제의가 많았지만, 외교관을 꿈꾸던 고인은 콜로라도 주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 아버지가 하는 영화사(아세아영화사)에서 영화 출연을 약속하게 되고, 모친상 이후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고인은 이후 한평생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필연으로 알고 전념했다. 고인은 정치권으로부터 온 숱한 러브콜을 거절한 것은 물론 TV 출연도 하지 않은 걸로 유명하다.

300여편의 작품을 남긴 고인의 연기 인생 황금기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다. 한국의 제임스 본드로 불리며 ‘국제금괴사건’(장일호, 1966) 등 수많은 첩보물에 출연했고 멜로, 사극, 문예물 등 1년에 20~30편의 작품을 촬영했다. 남자 배우로서 한국 최초로 화장품 모델이 되는 등 스타로도 자리매김했다. 특히 외모를 뛰어넘는 연기력을 갖추고자 꾸준히 갈고 닦아 다양한 작품에서 완숙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여섯 개의 그림자(1970년 아시아영화제 남우조연상)’, ‘전쟁과 인간(1971,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최고인기상)’, ‘충녀’(1972,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다정다한(1973,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피막(1981,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등의 작품 출연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고인은 “연기 생활을 하며 당대 거목인 신상옥, 변장호, 임권택, 이두용 감독 그리고 동시대 가장 유명한 극작가들인 신봉승, 김지연, 김수현, 곽일로 선생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행운이자 영광이었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영화계 원로로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한 고인은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1978~1984),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1991~1997), 한국예술인총연합회 이사(1992~1995) 등을 지냈다. 특히 1997년부터 영화배우협회 복지 회장을 맡아 음지에 있는 배우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1993년 서울특별시 문화상 예술부문 훈장을 받고, 2013년 영화배우로는 두 번째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으로서는 재임했다.

2016년에는 ‘달기(1964)’,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1965)’ 등 한·중 합작영화에 출연해 한국영화의 중국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진 공로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고인은 당시 시상식에서 “1960년대 대중문화의 꽃으로 활짝 피어났던 한국 영화의 황금기에 제 청춘을 영화배우로 불살랐다는 것이 몹시 그립고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며 “황혼의 길목에서 노배우의 가슴에 빛나는 훈장의 영예를 달아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양춘자 씨와 장남 홍정욱 전 의원이자 전 헤럴드 회장, 장녀 홍성아, 차녀 홍나리 등이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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