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레고리 펙'에서 '홍정욱의 아버지'로...원로배우 남궁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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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리며 1960~1970년대 충무로를 풍미했던 원로 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이 5일 세상을 떠났다.
'자매의 화원'(1959)으로 영화계 주목을 받았고, 당시 충무로 주요 영화사였던 신필름의 전속 배우가 되면서 본격적인 연기 활동에 나섰다.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연기분과 회장, 한국영화배우 복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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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리며 1960~1970년대 충무로를 풍미했던 원로 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이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영화계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숨졌다. 고인은 수년 전부터 폐암 투병을 하면서 외부 활동을 중단했다.
1934년 경기 양평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다니던 중 영화계에 입문했다. 원래 교수와 외교관을 꿈꿨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중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아 치료비를 마련할 생각으로 영화사를 찾으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데뷔작은 ‘그 밤이 다시 오면’(1959)이다. ‘자매의 화원’(1959)으로 영화계 주목을 받았고, 당시 충무로 주요 영화사였던 신필름의 전속 배우가 되면서 본격적인 연기 활동에 나섰다.
신필름에서 당대 최고 히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빨간 마후라’(1964)와 ‘내시’(1968) 등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선 굵은 외모로 남성미를 대변하는 배우로 꼽혔다. 이후 ‘국제간첩’(1965)과 ‘극동의 무적자’(1970) 등 첩보액션 영화에서 주연배우로 활약했다. 남성성을 내세운 할리우드 미남 스타 그레고리 펙(1916~2003)을 닮았다 해 ‘한국의 그레고리 펙’으로 불리고는 했다.
1970년대에는 충무로 이단아로 불리던 김기영(1919~1998) 감독과의 작업으로 눈길을 끌었다. ‘화녀’(1972)와 ‘충녀’(1972),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에서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 중년 가부장을 연기했다.
출연한 장편영화만 341편이다. 지난달 19일 세상을 떠난 이두용 감독의 ‘애가'(1999)가 마지막 장편영화였다. 노년에는 아들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의 국회의원 활동으로 뜻하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1971년 ‘전쟁과 인간’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 1973년 ‘다정다한’, 1981년 ‘피막’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았다.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한국영화인협회 부이사장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연기분과 회장, 한국영화배우 복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홍 전 의원이 경영했던 헤럴드미디어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양춘자씨, 홍 전 의원을 포함한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9시 30분이고 장지는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02)3010-2000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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