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러 ‘외교 설전’, 러시아 의도 경계하되 대응 신중해야

지난 2일 방한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 사진은 지난해 6월 상하이협력기구(SCO) 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타스통신/연합뉴스

한국과 러시아가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 비판 발언을 둘러싸고 며칠 동안 이례적인 설전을 벌였다. 북·러의 전략적 밀착이 심화되는 한편에서 한-러 관계가 최악의 위태로운 상황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북한 정권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비이성적 집단”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지난 1일(현지시각)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노골적으로 편향됐다”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외교부는 “일국의 외교부 대변인 발언으로는 수준 이하로 무례하고 무지하며 편향돼 있다”고 날 선 비판을 내놓았고, 정병원 외교부 차관보가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엄중 항의했다.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이 러시아와 직접 관계도 없는 윤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을 문제 삼은 배경을 주시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포탄과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에 큰 도움이 되는 상황에서 북한을 ‘엄호’하고 동시에 한국을 압박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막으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의 밀착으로 대담해진 북한이 동북아에서 신형 무기 개발과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낼 것으로 계산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번 설전은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의 2일 방한 직후 벌어졌다. 루덴코 차관의 방한은 지난해부터 추진되다 몇번의 연기 끝에 어렵게 성사됐다. 러시아 고위 인사가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한국을 방문해 외교부 당국자들과 만난 것은 양국 모두 소통과 관계 관리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무색하게 한-러 외교 설전이 요란하게 벌어져 파열음이 더욱 커진 건 매우 안타깝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북·러가 전략적으로 밀착하는 구조 속에서 한-러 관계 개선이 쉽진 않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신중하고 지혜롭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러 갈등이 악화될수록 북한이 더 대담하게 도발에 나설 환경이 조성돼 한반도 상황이 위태로워질 우려가 크다. 최근엔 신원식 국방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 의견”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언급해 러시아 외교부가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고위 당국자들이 불필요하게 관계를 악화시키는 발언을 삼가고, 현명하게 상황을 안정시키는 행동에 더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