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일 만에 나온 ‘불법 승계 무죄’에 굳어있던 이재용 ‘미소’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
5일 오후 2시5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재판장인 박정제 부장판사가 내어놓은 세 마디에 방청석이 술렁였다. “피고인들은 판결 요지 공시에 반대하지 않으시죠?” 박 부장판사가 무죄 판결의 요지를 관보나 신문에 실어도 괜찮겠냐고 물을 때까지도 이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들은 얼떨떨한 모습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판결 선고를 마칩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재판장이 선고가 종료됐음을 알리자 피고인들은 그제야 서로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재판장이 떠난 자리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맴돌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이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회장과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죄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약 50분간 검찰 측 주장을 하나하나 기각했다. 긴 선고 끝에 “무죄”라는 단어가 나오자 방청석에선 한 여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축하드려요”라고 소리쳤다. 법정 밖에서 대기 중이던 장정들도 피고인들이 한두 명씩 걸어 나오자 “사장님, 축하드립니다”라는 인사로 맞았다.
이 회장은 선고 전후로 침묵을 유지했다. 그는 “기소 3년5개월 만의 법원 판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등기이사 복귀 계획이 있느냐”“국민들께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 세례에 답하지 않은 채 검은색 제네시스를 타고 법원 청사를 빠져나갔다.
검찰은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히 검토·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상 이런 주요 사건 1심에서 완패하면 ‘즉각 항소’ 입장을 내곤 했던 것과 비교해 신중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사회정의와 법치주의에 반하는 재벌총수 봐주기 판결을 내린 법원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참여연대는 “삼성물산 불법합병을 통해 애초에 삼성그룹이 제시했던 합병 시너지도 구체화되지 않았고, 오직 이재용 회장이 3조~4조원에 이르는 부당이익을 거뒀는데도 불법승계 목적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단을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이번 판결은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된다. 이 판결대로라면 (이 회장은) 뇌물을 주고 처벌 받았지만 정작 그 뇌물의 목적이 없었다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오늘 판결은 사법부가 사실상 ‘법치는 없다’고 선언한 셈”이라며 “이 회장의 범죄는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 총수가 세금 안 내고, 편법으로 불법으로 기업을 차지하겠다고 범죄를 저지르다 들킨 일이다. 이를 무죄로 판결하는 것은 사법부가 스스로 한국 사회를 유전무죄의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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