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통,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다 [뉴스룸에서]

이정애 기자 2024. 2. 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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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무제한 대중교통 정기권인 기후동행카드 사용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역에 27일부터 기후동행카드로 승하차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이정애 | 스페셜콘텐츠부장

기후동행카드 인기가 후끈하다. 실물카드 구하기가 어려워, 당근마켓엔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글들이 쇄도한다. 명색이 ‘기후변화팀’을 관장하는 스페셜콘텐츠부 부장인데 이 움직임에 동행하지 않을 수야 있나. 당장 스마트폰을 열고 ‘모바일 티머니앱 내려받기→회원가입→기후동행카드 발급 및 충전’을 시행했다.

몇분 뒤, 수수료 500원을 물고 환불신청을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경기도에서 내릴 경우 사용 불가(반대도 마찬가지), 서울 안에서도 ‘빨간’ 광역버스는 안 되고, 지하철도 일부 노선·구간에선 적용이 안 된단다. 사용 가능 노선을 외우고 그때그때 교통카드를 달리 쓰라는 건데, 도무지 내 기억력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지갑 없이 휴대폰만 들고 다니는 처지에, 교통카드 변경 방법을 찾다가 버스요금도 못 내 허둥대는 상황이 벌어지겠다 싶어 포기했다.

사실 버스 기본요금 거리에서 집-회사, 회사-집을 반복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기후동행카드는 큰 혜택이랄 게 없다. 한달 내내 왕복 출퇴근 때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오히려 400원 손해, 매번 주말 나들이 때까지 꽉꽉 채워 이용해야 1만8천원(기본요금 구간 기준)을 아낄 수 있다. 물론 귤 한봉지 사기도 망설여지는 고물가를 고려하면 적잖은 돈이긴 하다. 이 카드 구매자(4일 기준, 31만장) 56%가 20~30대라니, 서울시 관계자의 말마따나 “사회활동을 시작하는 청년층의 교통비 부담을 유의미하게 줄여주고 있다”고 할 순 있겠다. 하지만 과연 이 정도 인센티브로 현재 대중교통을 정기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시민들까지 동참하게 만들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러니 ‘청년동행카드’, ‘서민동행카드’라면 몰라도 기후동행카드라 부르기엔 많이 과하다는 느낌이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 배 아프게 하지 말고, 그냥 이참에 수도권, 아니 전국의 대중교통을 무료화하면 어떨까?’ 이런 상상이 자연스레 가지를 친다. 당장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 할 1.5도(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 선이 깨지게 생겼고,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내용도 지키기 어렵게 생기지 않았는가. ‘대중교통을 무료화해 수도권 자동차 통행량을 10% 줄이면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179만3348톤(500㎿급 석탄화력발전소 1기 배출량과 비슷)쯤 줄어든다’는데, 무상 대중교통 정도는 해야 진정한 기후동행 아니겠나 싶었다. 룩셈부르크(물론 인구 66만명의 작은 나라긴 하다)는 벌써 4년 전부터 대중교통을 완전 무료화했다지 않나.

‘뭐, 예산은 땅 파면 어디서 그냥 나오냐?’ 예상되는 반론이다. 지난해 한겨레 보도를 보면, 무상교통과 다름없는 ‘1만원 교통패스’를 도입하는 데 연간 6조원의 예산이 든다. 단순 비교긴 하나,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약속하고 있는 철도 지하화 예산이 50조~103조6천억원이라니, 전국민이 수혜자가 되는 무상교통 예산으로 1년에 몇조원 쓰자는 게 뭐 대수인가. 몇년째 정부가 감면해준 자동차 유류세를 더 엄하게 물려 전국민 무상교통 예산으로 돌리면, 서민 고통 분담도 되고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지 않겠나.

지난달 22일 발표된 대규모(무려 1만7천명!) 기후위기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서, 이런 상상이 비단 홀로 꾸는 허무맹랑한 꿈은 아닐 거란 기대도 생겼다. 이 조사에서 시민 2명 중 1명(56.6%)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자동차 적정 대수를 정하고 차량등록을 제한하자는 주장에 찬성했다. 2명 중 1명이 차량을 보유(2023년 2587만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급진적’이라고 할 만한 답변이다. 게다가 5명 중 3명(62.5%)은 4·10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라면,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다르더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도 했다. 유권자들 생각이 이럴진대 무상교통 도입 주장이 과연 힘이 없을까.

물론 전국민 무상교통을 실현하기 위해선 지방의 부족한 대중교통 인프라 확산 등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나. 안 될 이유부터 따지지 말고, 일단 상상의 날개부터 펴보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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