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 기업 유치에 쏟은 지원만큼 고용안정도 챙겨야
[왜냐면] 김순자 |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집행위원
한국전기공사협회가 지난해 11월21일 ‘건물종합관리 위탁용역 입찰’을 공고하면서, 청소 인원을 11명에서 7명으로 줄였다. 이에 반발하여 투쟁을 시작한 노동조합 조합원은 전원 해고됐다. 원청의 누군가는 “노동조합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이라며 노동조합에 책임을 전가했고, 새롭게 선정된 용역업체는 “원청이 전원 고용 승계하라면 할 것”이라며 고용승계 책임을 회피했다. 노동자들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고, 충청북도의 책임도 묻고 있다.
2021년 충청북도는 한국전기공사협회를 오송산업단지에 유치하면서 행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충청북도의 기업투자유치 주요 정책은 신·증설 기업, 역내 이전 기업, 서비스업 등에 △입지 및 설비 보조금 지원(투자비의 10% 이내) △대규모 투자기업 특별지원(100억원 이상) △고용 보조금(1인당 600만원) △기숙사 임차비(중소기업 노동자 월 30만원, 최대 8개월까지) △기숙사 신축, 개보수 △비즈니스센터 지원 △출퇴근 지원 △재생사업 지원 등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전기공사협회는 충청북도로부터 100억원 이내의 보조금과 통근버스, 기숙사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대부분의 지방정부는 기업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지역 주민의 세금으로 투자금의 10%에서 많게는 50%까지 입지 및 설비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주민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은 고려하지 않는다. 지방정부의 기업 유치가 지역주민의 노동권과 맞물리지 않는다면 지방정부의 노동정책은 길을 잃는다.
충청북도는 2019년 이전까지 노동조례 하나 없는 노동정책 불모지였다. 2018년부터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는 저임금·비정규직·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 주민청구운동 등 노동조례 제정운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충청북도에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호 및 지원 조례’,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호 조례’, ‘노동안전·보건 조례’, ‘생활임금 조례’ 등이 제정됐다. 그러나 2019년 제정된 ‘충청북도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호 및 지원 조례’는 4년이 지나도록 시행하지 않아 잠자는 조례가 됐고,생활임금의 민간 확산 정책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사이 비정규직은 역대 최대로 증가했고, 플랫폼 노동 등 비정형·불안정 고용과 초단시간 일자리는 기형적으로 증가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 또한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충청북도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호 및 지원 조례’는 비정규직 실태조사, 종합계획 수립, 차별 처우 금지,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 정규직 전환 노력 등을 규정하고, 도지사는 민간 부문의 장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차별 해소를 위한 대책 수립과 시행을 권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기공사협회는 지원을 아끼지 않은 충청북도의 노력이 무색하게, 지역주민의 노동기본권을 박탈하고, 용역·위탁 노동자의 고용승계가 당연하다는 사회적 약속을 짓밟고, 더 질 낮은 일자리를 강요하며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사회 불평등,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너무도 가볍게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충청북도의 적극적 행정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이 지역주민의 고용안정과 생활임금 보장,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차별 해소 등과 맞물리도록 앞으로 기업과 맺는 협약(MOU)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강제할 필요가 있다. 지역주민을 함부로 해고하고, 노조할 권리를 박탈하지 못하도록 ‘지방재정 투자사업 심사’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전기공사협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되찾는 것은 지역의 비정규직·저임금·작은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다. 모든 노동자가 누리는 보편적 권리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지방정부의 노동정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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