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지진 1년...아파트 주민이 컨테이너 피란민 부러워 하는 이유

말라티아/류재민 기자 2024. 2. 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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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튀르키예 말라티아 도심에 조성된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 모습. 바로 옆 지진에도 멀쩡히 살아남은 12층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뉴시스

1년 전 발생한 튀르키예 대지진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동부 내륙 도시 말라티아. 이재민 4000여 명이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촌을 3일 찾았다. 사람 셋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임시 숙소 2000여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컨테이너들 바로 옆에는 12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우뚝 서 있었다. 6개월째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찰라 바이락타르(15)에게 “아파트 사람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편치 않을 것 같다”고 말을 걸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오히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걸요.”

바이락타르는 “지진이 있었던 이후로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약간의 진동만 느껴져도 아파트에서 뛰쳐나오고, 낮은 층 주민들은 심지어 발코니나 창문에서 바로 뛰어내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들 역시 건물 밖으로 나와 살고 싶어 하지만, 임시 컨테이너에 빈자리가 없어서 그냥 저 집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튀르키예 말라티아의 지진 이재민을 위한 임시 컨테이너 내부 모습. 6개월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15세 소녀 찰라 바이락타르는 부모님이 안방에서 자고, 남동생과 자신은 거실에 있는 소파 2개에서 각각 잔다고 설명했다./찰라 바이락타르 제공.

그러면서 “주말에는 컨테이너를 떠나 친할머니가 지진 피해 이후 입주한 집에서 보내곤 하는데, 오히려 거기 있으면 지진으로 집이 무너질까 불안해 밤에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바이락타르는 “또래 절반 정도가 지금도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며 ”무너졌던 집이 복구되는 1~2년 동안 이곳에 더 머물 예정이지만, 그 시간이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21세기 최악의 자연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튀르키예·시리아 강진이 발생한 지 6일로 1년이 된다. 튀르키예에서만 5만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재민은 1400만명이 넘었다. 이재민들의 임시 터전인 된 컨테이너촌이 이곳 말라티아주(州)에만 74개(컨테이너 2만8643동),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 전체로 놓고 보면 414개(21만5400동)에 달한다.

4일 오전 튀르키예 아디야만 도심에 1년 전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잔해가 남아있다. /뉴시스

이날 외신 기자들에게 복구 현장을 공개한 튀르키예 정부는 집과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신축 주택이 신속하게 건립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510억리라(약 2조2400억원)가 투입돼 30만7000채를 건립해 이재민들에게 공급할 예정이다. 건립 작업이 빠르게 진행된 일부 지역에서는 최근 입주가 시작됐다. 지진 참사 1년 만에 비로소 새 집을 얻게 된 것이다.

3일 오전 튀르키예 말라티아 이키즈체에 마련된 지진 피해 이재민 영구 거주지/뉴시스

그러나 복구 작업이 순탄하게만 진행되지는 않았다. 2일 말라티아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상업 지구 ‘아타튀르크 거리’에서 만난 카안 바루추(30)는 “주 정부의 일방적 복구 사업 때문에 날벼락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여행사 ‘골든 말라티아’를 운영 중인 그는 이 거리 전체가 대규모 재건 사업에 들어갈 예정이라 두 달 안으로 사무실을 빼야 한다는 통보를 열흘 전에야 받았다고 했다. 무리해서라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으로 사무실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은행에서 추가 대출을 받아 4개월 전에 이곳에 왔는데 또다시 쫓겨나 다른 사업장을 알아봐야 할 처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바루추는 “지진 이후 지난 한 해 동안 3번이나 사무실을 옮겨 다니느라 은행 네 군데서 약 1만3000달러(약 1700만원)가량을 빌렸고, 개인적으로 꾼 돈도 많다”고 했다. 지진 이전에는 한 달에 어림잡아 약 5만리라(약 220만원) 정도를 벌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고 한다. “이자 내는 것조차 빠듯해 또래들처럼 결혼은 꿈도 못 꾼다”는 그는 “도시를 재건해야 한다는 정책의 취지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은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나도 여전히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3일 튀르키예 말라티아 예실리우르트에 조성된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서 이재민들이 물을 긷고 있다. /뉴시스

아물지 않는 상처 속에서도 주민들은 삶이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바루추는 “나도 한국처럼 안전한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지만, 이곳에 태어난 것 자체가 운명”이라며 “열심히 돈을 벌면서 버티다 보면 이곳도 5년 정도만 지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날 마주친 이재민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따뜻한 홍차를 가득 부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컵을 기자 손에 쥐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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