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 스터디] 제조업 검사 장비 1위 고영테크놀러지 | 반도체·디스플레이 불황, 의료 로봇으로 돌파
제조업 불황으로 실적이 악화한 고영테크놀러지(고영)가 의료 로봇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한다. 2020년 수술 현장에 첫 도입된 고영의 의료 로봇은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등 초석을 다진 뒤 글로벌 판매를 시작해 2025년부터 수익이 극대화될 전망이다.
고영은 삼차원(3D) 정밀검사 장비를 만드는 코스닥 상장사다. 테슬라, 지멘스 등 글로벌 대기업을 비롯해 전 세계에 3400여 개 고객사의 요청에 따라 장비를 주문 제작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자동차 전장, 군수 등 각종 첨단 제조 영역에서 고영의 검사 장비가 쓰인다.
주력 제품은 3D 납 도포 검사 장비(SPI)와 3D 부품 실장 검사 장비(AOI)다. 매출액의 90%가 여기서 나온다. 3D SPI는 인쇄회로 기판(PCB) 표면에 납땜이 제대로 됐는지를 3D로 측정해 검사하고, AOI는 납땜 위에 부품이 제대로 얹혀 있는지를 검사한다. 제조 과정에서 불량을 검출해 수율을 향상하는 역할을 한다. 두 제품은 줄곧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이어 오고 있다. 3D SPI 시장점유율은 50%가 넘고, 3D AOI도 5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고영은 로봇 연구 1세대인 고광일 대표가 2002년 창업했다. 자본금 10억원으로 시작했는데 3D SPI 장비를 세계 최초로 출시하면서 연 매출 20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 본사를 비롯해 일본, 북미, 유럽, 동남아시아, 중국 등에 현지 법인을 뒀다. 대표이사 직속으로 연구소 네 개를 두고 있고, 연 매출의 20%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고 있다.
다만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제조업 불황이 이어지면서 최근 실적은 역성장을 기록했다. 증권가가 추정한 고영의 2023년 실적은 매출 2192억원, 영업이익 168억원이다. 각각 전년 대비 20%, 62% 줄어 2021~2022년 같은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하게 됐다. 고영 관계자는 “반도체와 정보기술(IT) 산업 부진에 따른 투자 심리 악화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고영은 돌파구로 의료 로봇을 점찍었다. 고영은 올해 의료용 로봇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새 성장 동력을 다질 계획이다. 고영은 2016년 뇌 수술용 로봇 ‘카이메로(KYMERO)’를 개발했다. 이 로봇은 환자의 의료 영상을 기반으로 의사에게 표적 위치와 자세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수술 시간과 환자 후유증을 줄여 주는 장점이 있다.
2020년 세브란스병원에 첫 도입된 카이메로는 지난해 하반기 세 곳의 대형 병원에 각 1대씩 공급됐다. 지금까지 총 300여 건의 수술이 진행됐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많은 판매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안에 미국 FDA 승인도 추진 중이다.
고영에 따르면, 신경외과 수술 로봇의 세계시장 규모는 2021년 2조원에서 2028년 5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영은 2025년을 기점으로 의료 로봇 사업을 통한 외형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영 관계자는 “지난해 성빈센트병원, 인천성모병원에 이어 최근 서울대병원과도 공급 계약을 맺으며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올해 FDA 승인과 더불어 해외시장 공급이 본격화되면 매출 성과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창업주는 국내 1세대 로봇공학자 고광일 대표 ‘금성사’ 출신…특수관계인은 모두 회사 임원고영 창업주인 고광일 대표는 국내 1세대 로봇 공학자다. 서울대에서 전기공학과 제어계측공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금성사 중앙연구소에서 로봇을 연구하다, 1985년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3년간 전기전자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LS산전 연구원과 미래산업연구소 소장을 거쳤다. 미래산업연구소에서 고 대표는 소형 칩마운터(PCB에 정밀 부품을 장착하는 장치)를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산화에 성공했다. 특히 고 대표가 개발한 소형 칩마운터는 소형 트럭에 준하던 기존 제품 크기를 책상 크기로 혁신적으로 줄여 주목받았다.
이후 고 대표는 2002년 45세 나이에 고영테크놀러지를 창업했다. 모바일 기기 시장이 커지면서 전자 부품이 작아지던 시기였다. 고 대표는 부품 소형화로 인한 제조 현장 애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검사 장비 개발을 시작했다. 검사 장비 시장은 장비별 글로벌 시장 규모가 5000억원에 못 미치는 작은 시장이지만, 고 대표는 오히려 대기업과 경쟁을 피하면서도 고영만의 기술 경쟁력을 앞세울 수 있는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고 대표는 미래산업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3D SPI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그간 육안이나 이차원(2D) 화면 검사에 의존하던 전자 제품 불량 검사에 3D를 적용해 불량률을 0%대로 낮췄다. 3D SPI는 경쟁사 대비 20% 이상 비싸지만, 고영은 이 장비로 로봇 선진국의 2D 장비를 압도했다. 기술 경쟁력을 앞세워 고영은 2006년부터 글로벌 SPI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 오고 있다.
2008년 코스닥 상장 후에는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AOI를 3D로 만드는 데 도전했다. 약 5년간의 개발 끝에 2012년 3D AOI를 출시했고, 지금은 3D SPI보다 매출액이 앞서고 있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3분기 기준 3D AOI 48.3%, 3D SPI 42.2%다.
고영의 최대 주주는 1월 5일 기준 지분 20.92%를 보유한 고영홀딩스다. 고영홀딩스는 고 대표가 지분 대부분을 보유한 지주사다. 고 대표는 창업 후 10%대 지분율을 이어오다, 2017년 고영홀딩스를 설립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고영홀딩스를 제외한 특수관계인은 전부 회사 임원으로, 창업 초기 멤버인 고경철(0.36%) 이사를 제외하면 인당 0.05% 안팎이다. 이 밖의 주주로는 해외 자산운용사들이 있다. 독일 알리안츠글로벌인베스트, 퍼스트센티어, 영국 베일리기포드가 2023년 3분기 기준 각각 10.17%, 6.11%, 5.84%를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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