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멸종 위기 몰린 심해 동물 연구에 전기 마련] 바다 깊은 곳 신종(新種) 확인, ‘21년→분 단위’로 단축
바다 깊은 곳에 사는 생물들은 대부분 아직도 과학자들이 연구하지 못한 종(種)들이다. 심해(深海) 생물을 붙잡아 연구실에서 유전정보를 확인하기까지 길게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이런 과정을 현장에서 단 몇 분 안에 마칠 수 있는 로봇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가 발전하면 멸종 속도가 훨씬 빠른 심해 생물들을 찾아내고 보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 해양공학과의 브레넌 필립스(Brennan Phillips) 교수 연구진은 1월 18일(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심해에 사는 연약한 동물을 만나고 몇 분 안에 모양과 행동을 3D(입체)로 확인하고 유전자를 분석할 생체 조직까지 얻을 수 있는 기술을 수중 탐사 로봇으로 시연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는 로드아일랜드대를 비롯해 대학과 연구소 6곳에서 과학자 15명이 5년 동안 참여했다.
해파리 유전자가 인간보다 10배 커
연구진은 2019년과 2021년 미국 하와이와 샌디에이고 앞바다에서 수중 탐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심해 동물 61마리를 촬영했고, 그중 32마리를 포획했다. 연구진은 수심 1200m에서 만난 심해 동물 네 종에 대해 모습부터 행동, 유전자까지 모든 정보를 확보했다. 이번 논문에 나온 심해 동물은 수천 마리 작은 해파리들이 모여 군집을 이룬 관해파리 두 종과 지렁이처럼 생긴 환형동물인 다모류(多毛類), 멍게와 미더덕 같은 피낭동물인 살파(salpa) 각각 한 종이다. 연구진은 하루에 심해 동물 조직 14개를 확보하고 테라바이트(1조 바이트) 규모의 정보를 얻었다.
일례로 연구진은 수중 탐사 로봇에 달린 4K 초고해상도(UHD) 카메라로 물속을 떠다니는 플랑크톤인 토모프테리스(Tomopteris)가 머리에 달린 수염 두 개로 먹잇감을 감지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동시에 몬테레이만 수족관 연구소(MBARI)가 개발한 레이저 장비와 입체 카메라로 형태와 동작을 3D로 재구성했다. 연구진은 로봇팔로 심해 동물의 조직을 채취해 유전자까지 해독했다. 이를 통해 다모류인 토모프테리스가 감각 수염으로 단맛을 감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단맛이 먹잇감에 있는 당분이거나 노폐물인 암모니아에서 나온다고 추정했다. 관해파리의 DNA에 있는 염기 수가 인간보다 10배나 크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종이접기처럼 작동하는 12면체 로봇팔
심해 동물은 해파리처럼 몸이 부드럽고 약해 어렵게 채집해도 손상되기 쉬웠다. 겨우 잡았다 해도 수면 위로 올라오는 도중에 스트레스를 받아 조직이 크게 훼손됐다. 이 상태로 병에 넣어 보존한 다음 전 세계 연구실로 보내 유전자를 분석했다. 유전자의 본모습을 알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논문 제1 저자인 비글로 해양과학연구소의 존 번스(John Burns) 박사는 뉴욕시립대 데이비드 그루버(Davud Gruber) 교수와 함께 기존 포획 방법이 해파리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해파리 몸에 손상을 주지 않고 붙잡아도 10분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전정보가 바뀌었다. 이번 연구진은 하버드대 로버트 우드(Robert Wood) 교수가 개발한 로봇팔이 물속 포획 현장에서 바로 심해 동물의 생체 조직을 채취해 보존액에 넣어 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심해 동물의 유전자를 실제 모습 그대로 스냅사진을 찍는 것과 마찬가지다.
로봇팔 이름은 ‘회전 접이식 12면체’의 영문 약자인 RAD-2다. 말 그대로 종이접기를 하듯 오각형 평면 조각을 이어 붙여 12면체를 만들 수 있다. 로봇팔을 펼치고 있다가 그 안에 심해 동물이 들어오면 접어 포획한다. 내부 공간이 농구공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커서 작은 심해 동물을 손상하지 않고 가둘 수 있다. 이후 로봇팔 안쪽의 회전 칼날로 생체 시료를 채취하고 보존 장치로 보낸다.
필립스 교수는 “지금까지 심해 동물이 신종(新種)으로 확인되기까지 최대 21년이 걸렸다”며 “앞으로는 수중 탐사 로봇이 심해 동물과 마주친 후 몇 분 안에 모습과 움직임을 상세하게 측정하고 유전자까지 해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확보한 정보는 컴퓨터에 입력돼 심해 동물의 ‘사이버 표본’이 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미국 조지아대 스키드웨이 해양연구소의 애덤 그리어(Adam Greer)는 ‘사이언스’에 “이번에 개발된 방법은 해양 생물 시료를 채취하는 놀랍도록 새로운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의 해양생물학자인 카렌 오스본(Karen Osborn) 박사는 “바다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 서식지이지만 사실상 미개척지다”라고 덧붙였다.
포획 동물 피해 최소화할 기술 개발 필요
수중 탐사 로봇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지금은 생체 조직을 채취하기 위해 포획한 심해 동물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앞으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심해 동물을 붙잡아 정보를 얻고 산 채로 풀어줄 수 있도록 기술을 발전시킬 계획이다.
그루버 교수는 “궁극적인 목표는 심해에서 의사의 검진처럼 조직 채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심해 동물의 멸종률이 다른 동물보다 100배나 높으므로 이러한 접근 방식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심해 광물 채굴이 추진되면서 심해 생물 멸종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4000m 아래 해저 평원에는 감자 크기의 광물 덩어리인 단괴(團塊)가 널려 있다. 그 안에는 배터리와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니켈과 망간, 코발트, 구리 같은 희귀 금속이 들어있다. 육지에서 사람들이 미세 먼지에 시달리듯, 심해저 생물도 채광기가 일으킨 부유 퇴적물에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
과학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해저 광산을 개발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기업들은 국제해저기구가 채굴 관련 규제안을 발표하면 당장 상업 채굴을 시작할 계획이다. 그 시기는 2024년 말이나 2025년 초로 예측된다. 태평양의 소국인 나우루는 유엔 해양법협약의 조항을 발동해 규제 입안 속도를 더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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