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용의 리얼밸리 <2>] 멀리 보는 시야의 힘…韓美, 혁신을 대하는 시간 차이

김태용 EO 대표 2024. 2. 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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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인공지능(AI) 기반 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 AI(Perplexity AI)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아라빈드 스리니바스가 최근 기업 가치 5억2000만달러(약 6946억원)를 인정받고, 7600만달러(약 1015억원)를 투자받았다. 구독 매출이 연간 200만달러(약 27억원) 정도인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매출 250배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여기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도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크게 화제가 됐다. 당시 퍼플렉시티 AI의 펀딩 라운드를 국내 주변 벤처 투자자에게 소개했을 때 ‘말도 안 되는 거품’이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런데 성공적으로 펀딩이 종료되고 엔비디아, 데이터브릭스,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다들 아연실색한 모습이다.

김태용 EO 대표현 퓨처플레이벤처파트너

2015년에 창업한 오픈AI가 2022년 채팅형 AI 챗GPT 3.5를 출시하기까지 조 단위 금액을 투자했지만, 사람들은 인공일반지능(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등장은 멀었다고 말했다. 2011년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던 카카오가 자금난을 겪고 있을 때도 한국의 벤처캐피털들은 카카오에 투자하지 않았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한국계 미국인 에릭 킴이 갑자기 나타나 카카오에 거액을 투자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은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도 실리콘밸리에선 신기술 스타트업들이 창업과 동시에 수백억에서 수천억원대 기업 가치로 투자받고 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왜 말도 안 돼 보이는 것들에 무지막지한 돈을 투자하고, 창업자들은 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걸까.

실리콘밸리 창업자, 투자자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 중 ‘무어의 법칙’이 있다. 인텔 창립자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견한 관찰 결과로, 마이크로칩 기술 발전 속도에 관한 법칙이다.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 용량이 18~24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성능이 거의 5년마다 10배, 10년마다 100배씩 개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지고 동시에 저렴해진다. 그리고 기술이 특정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아이폰, 챗GPT 같은 놀라운 혁신이 일어난다.

2023년 8월 무어의 법칙을 토대로 인재를 양성하는 싱귤래리티대의 더못 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만났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이곳은 5년 내 10억 명의 삶을 바꾸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 그에게 무어의 법칙이 실리콘밸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창업자들과 투자자들 모두가 삶을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기술은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가격은 계속 저렴해질 것이며 어느 순간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다 가능해질 것이라는 걸 믿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투자할 수 있게 됐다.”

한국에서 무어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들어봤어도 사업 계획과 투자 유치에 적용하는 사람은 본 적이 거의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혁신을 직접 만들어내는 것보다 쫓아가는 것이 우리가 승리해 온 방식이기 때문이다. 또 말도 안 되는 혁신을 지원할 자금이 부족하고, 그런 자금을 넣어서 큰돈을 번 경험도 자본시장에 없다. 반면 2015년 샘 올트먼은 데이터양, 컴퓨팅 파워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면서 긴 시간 투자하면 AGI를 직접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오픈AI를 창업했다. 조 단위 자금을 7년 이상 투자한 끝에 세상을 바꿨다. 불과 2022년 인턴 몇 번 해본 아라빈드 스리니바스는 ‘구글을 이기겠노라’ 다짐하며 퍼플렉시티 AI를 창업했고, 실리콘밸리 최고 기업인들이 그의 꿈을 지지하며 뭉칫돈을 쏴줬다.

혁신을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시간 차이는 몇 년일까. 7년일까, 그 이상일까. 지금부터 쫓아가기 시작하면 5~10년 뒤에 또 어떤 세상이 열려있을까. 쫓아가는 활동과 동시에 10~20년 뒤를 조망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꾸준히 투자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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