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도의 음악기행 <79> 클래식 종주국 독일에 대한 우려] 이벤트성 소비 트렌드와 마주한 클래식 음악 공연계
최근 겨울방학을 맞아 필자가 독일에서 추진하고 있는 음악 연구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독일 함부르크를 찾았다. 춥고 흐리고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전형적인 이곳의 겨울 날씨가 필자를 반겨줬다. 비록 이곳 현지 겨울 날씨가 다소 음침하다고는 하나, 독일 클래식 공연계에 있어 최성수기에 해당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실내 활동이 많아지는 겨울 시즌에는 독일 방방곡곡의 콘서트홀 및 오페라 극장에서 각 단체가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기 때문이다. 필자도 방문 기간에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연주 단체들의 공연 티켓을 예매하고, 이곳 독일 공연계의 트렌드도 살펴보고 싶어 함부르크 음악계의 상징과도 같은 엘브필하모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엘브필하모니는 함부르크 구 항구 지역을 신도시로 개발하며 엘베 강가에 세워진 콘서트홀이다. 2017년 개관했으며, 건축비만 8억6600만유로(약 1조2602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국책 사업이었다. 북독일방송교향악단(NDR Elbphilharmonie Orchester)이 상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면서 흥미로움과 동시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우선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이 인상적이었다. 지역사회 주민과 연계된 프로그램부터, 어린이·학생을 위한 프로그램 그리고 세계적인 대가의 연주부터 신인들에 이르는 넓은 연주자의 스펙트럼, 또 유명 작곡가에 국한되지 않는 현시대 작곡가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좀처럼 절반 이상 판매된 공연을 찾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콘서트홀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는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의 공연 티켓 판매가 부진하다는 것에 참으로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공연계도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분야고, 모든 콘서트의 티켓이 꼭 잘 판매돼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곳 독일은 바흐, 베토벤, 브람스 등 대가들이 태어난 클래식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기억하는 지난 20여 년의 유럽 생활에서 독일은 대형 콘서트홀 공연뿐만이 아닌, 동네의 작은 음악회도 빈자리를 찾는 것이 힘들 정도로 클래식 공연계가 매우 활성화됐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한 점을 이방인의 시선으로도 느낄 수 있는데, 현지의 걱정은 말로 부족할 것이다. 독일 여러 기관에서 발표하는 통계만 봐도 그 현실을 숫자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음악협회 소속 독일음악정보센터(MIZ)에서 발표한 2003년부터 2023년까지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인구 증감을 조사한 통계만 보더라도 70대 이상에서 4%포인트 정도의 증가가 있을 뿐 전 연령대에서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독일 독일연방음악산업협회(BVMI)에서 2023년 발표한 2013~2022년 음악 장르별 매출 점유율 분석 통계를 보면 힙합 등 대중음악 장르가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클래식 음악 산업 총매출 점유율은 2013년 7.2%에서 2022년 1.8%로 그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의 주류 소비층의 연령대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독일 데이터 수집 전문 온라인 플랫폼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클래식 콘서트를 방문하는 관객 중 50세 이상의 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70~80%대로 집계되고 있다.
이쯤 되면 클래식 종주국인 독일 사회 내에서도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일례로 독일 대표 클래식 라디오 방송 격인 ‘바이에른 클래식(BR Klassik)’이 2023년 9월 온라인에 게재한 사설 ‘아직 음악이 얼마만큼 우리에게 가치가 있을까(Wie viel ist uns die Musik noch Wert)?’에서 현 상황을 몇 가지 카테고리로 진단했다. 일례로 문화 소비의 중심이 야외가 아닌 점점 집 안 소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유튜브 시청이 그 예가 될 것이다. 특히 지난날 기승을 부렸던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이러한 현상을 더욱 가속시켰다고 분석했다. 그 밖에 문화생활을 포함한 여가 활동 방식에 있어 그 종류와 가짓수가 증가함에 따라 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고, 그것 또한 클래식 음악 공연계의 침체를 야기했다고 진단했다. 덧붙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뮤지션들의 공연 티켓은 티켓 오픈 직후 바로 매진되는 것에 비해 그렇지 않은 공연은 불과 좌석 몇 줄 채우기 어려운 양극화 현상을 지적하며, 남들이 접하기 어려운 진귀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 이벤트적인 체험성 소비로 옮겨가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물론 독일 클래식 음악 시장의 상황을 이렇게 글로 옮기면 당장이라도 음악 시장이 침체를 넘어 사멸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절대적인 수치로 봤을 때 아직 독일 클래식 음악 시장은 유럽연합(EU)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며, 규모뿐만 아닌 이곳에서 생산된 클래식 음악 콘텐츠는 질과 양적으로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다.
이쯤 되면 남의 나라 걱정할 게 아닌 내 나라의 사정은 어떤지 마음이 앞선다. 다행히도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매년 발행하는 ‘공연 예술 조사’ 보고서의 2023년 상반기 통계를 보면 한국의 클래식 음악 공연 수는 3247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약 12%가 증가했으며, 티켓 예매 수 및 판매액 또한 38%가 넘는 증가세를 기록했다. 물론 대중음악과 비교했을 때는 그 비율이 낮지만, 팬데믹을 겪었고, 높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겪는 현재의 어려운 경기 상황에 이런 증가세를 보이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 관객의 평균연령 또한 독일이나 서구권 관객에 비해 훨씬 젊은 것도 국내 공연계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런 밝은 소식이 있음에도 명암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빈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같은 해외 유명 단체의 내한 공연 및 일부 스타 연주자들에게 관객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문화예술과 관련된 정부 지원 예산이 삭감된다는 소식이 들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다수의 공연 관계자가 우려하고 있다. 끊임없는 현대의 경쟁 사회에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산업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 잣대로 본다면 클래식 음악은 어쩌면 도태되는 게 마땅한 분야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클래식 음악은 기초과학과 그 의미를 비교해 볼 수 있다. 기초과학에서 창출해 내는 신기술은 당장 시장의 이익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추후 다양한 응용을 통해서 우리 산업을 전방위적으로 성장시킨다. 그러한 원천 기술의 가치는 돈으로 따지기 힘들 것이다. 현재 우리가 즐겨듣는 대중음악 및 영화, 광고,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 사용되는 음악도 그간 수백 년간 클래식 음악이 쌓아온 유산을 토대로 생겨난 음악이다. 앞으로도 클래식 음악은 많은 대중을 즉각 설득하는 것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시간을 두고 본다면 결국 다양한 장르에 영향을 주며 우리 문화생활에 전반적인 향상을 꾀할 것이다. 삶이 각박해질수록 클래식 음악이, 그리고 예술이 많은 이의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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