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식구가 1년째 컨테이너 단칸방에 … 매일 밤 지진 악몽"
도심 뼈대만 남은건물 수두룩
상점들 대부분 컨테이너 영업
식료품점 문 열기 전부터 긴줄
이재민 위한 복구작업 한창
정부 건설 공동주택 20만채
이르면 이달부터 입주 시작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남부를 중심으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무려 5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 지진은 '21세기 최악의 자연재해'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매일경제가 튀르키예 대지진 1년을 맞아 3~4일(현지시간) 7개국 50명의 국제기자단과 가장 큰 지진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인 말라티아주(州)와 아디야만주, 카라만마라슈주를 찾았다. 지진의 상처를 애써 가리려는 노력이 역력했지만, 곳곳에 남은 대재난의 흔적은 감추기엔 너무 크고 깊었다.
말라티아주의 주도 말라티아 한가운데에 있는 주요 빌딩과 쇼핑몰은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었냐는 듯 멀쩡했다. 드나드는 사람들의 모습도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차를 타고 불과 5분 정도만 중심가를 벗어나도 곳곳에 문도 창문도 없이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일부만 가림막으로 덮인 채 늘어서 있었다. 상점들은 대부분 컨테이너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오후 4시께 한 식료품 가게 앞에는 영업 전부터 2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시내에서 빵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이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사람들이 먼 곳에서도 찾는다고 했다.
말라티아주에서는 지난해 발생한 지진으로 1237명이 사망했고 6444명이 부상을 입었다. 완파된 건물은 6643채였고 심각한 피해를 입은 건물은 3만5907채에 달했다.
에르신 야지즈 말라티아주지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1999년 발생한 지진으로 삼촌과 조카를, 또 다른 지진으로 고모와 사촌을 잃었는데 20여 년 후 같은 비극이 벌어졌다"며 "도시 중심부와 상업지구 재건을 98% 완료해 지금은 폐허가 없어졌고, 처벌을 강화하면서 2배로 치솟았던 범죄율도 지금은 줄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지진으로 집과 가족을 잃고 21㎡짜리 좁은 컨테이너에서 1년 가까이 대여섯 명의 가족과 함께 사는 이재민들에게는 이번 겨울 추위가 매섭기만 하다. 말라티아주에서는 현재 이재민 11만7232명이 컨테이너 등 임시 가옥 3만2295채에 머무르고 있다.
이곳에서 4명의 자녀와 살고 있다는 에미네(44)는 "지난해 지진으로 남편의 형제와 조카를 잃었다. 지진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지진의 상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컨테이너촌에서 거주한 지 6개월가량 됐다는 카글라(15)는 "가족이 모두 살기에는 컨테이너가 너무 작다. 여동생이 당뇨로 고생하고 있는데 제대로 치료할 수 없어 힘들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말라티아 주정부는 튀르키예 주택개발부와 함께 이재민을 위한 주택 건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내에서 20여 분 차로 이동하니 공동주택단지 '이키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말라티아 주정부는 총 2만5000명의 인력을 동원해 1만4636채의 주택을 건설하고 있다. 이키제 단지에는 총 736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데, 크기는 모두 85㎡로 동일하다. 방 3개와 거실 1개, 화장실 2개로 구성된 집은 쾌적해 보였다.
말라티아주에 사는 사람 중 자신이 살던 집이 완전히 파괴됐거나, 가족이 사망한 사람들만 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말라티아 주정부는 추첨을 통해 공동주택 거주자를 뽑는다.
추첨에 당첨된 사람들은 이 집을 소유할 수 있다. 임차료 없이 살다가 20년 후 일정 금액을 지급하면 되며, 첫 2년 동안에는 집값을 분할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당첨된 사람들에게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예정이다.
어느 정도 대지진의 상처가 복구되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들이 보였다. 말라티아 이키제 공동주택단지는 불과 150일 만에 완성됐다. 아디야만 공동주택단지도 불과 4개월 만에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난 2월 지진으로 주택 68만여 채가 파괴된 것으로 추산했다. 4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앞으로 두 달 동안 약 7만5000채의 새 주택이 인도될 것"이라며 "정부가 올해 총 20만채의 주택을 인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말라티아와 아디야만 주정부 관계자는 강력한 지진에도 피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 새 공동주택을 잘 만들었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건물 건설에 어느 정도 예산이 투입됐고 어떤 원리의 내진 설비를 적용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오는 4월 튀르키예 지방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서 졸속으로 이재민을 위한 공동주택을 완성해 나눠 주면서 표심을 얻으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말라티아주(튀르키예)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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