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사법농단' 의혹 유죄 중 최고위급... 결국 행정처 차장이 '몸통'
"법원 구성원에 자괴감" 질책하면서도
"사법농단 실체는 존재하지 않아" 판단
이른바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고 법관 독립을 침해한 임 전 차장의 일부 혐의는 유죄로 봤지만,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 개입 등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 신뢰를 저버렸다"면서도 "'사법농단'의 실체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 이번 판결에 대해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부장 김현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5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지난달 26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사법농단의 실무 책임자인 임 전 차장이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된 모양새다. 임 전 차장은 2012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과 차장으로 근무하며, 사법행정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재판부 "사법행정권 사유화" 질책했지만...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재판개입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재항고 이유서 검토 지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법적 책임 검토 지시 △당시 현역 국회의원(홍일표·유동수)의 정치자금법·공직선거법 위반 관련 검토 지시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 대한 사건 정보 및 자료 수집 지시 등이다.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관련 위계공무집행방해 및 업무상 배임(배임액 3억 3,000여만 원)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이나 청와대를 위한 목적에 사용했다"면서 "사법부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가 저하됐고 법원 구성원에게도 커다란 자괴감과 책망감을 안겨줬다"고 질책했다.
그러나 재판부가 무죄로 선고한 혐의가 더 많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상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관련 직권남용 혐의가 대표적이다. 양 전 대법원장 1심 재판부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사건과 관련해선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을 인정한 것과 판단이 엇갈리는 셈이다.
직권이 없어 남용이 없다는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와 마찬가지 논리도 이어졌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사건과 관련 1심 재판장에게 중간판결적 판단을 요구했다는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피고인에게 재판에 개입할 직권이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법 감정이 맞지 않는다고 하여 일선법원 재판 개입 권한이 있다고 무리하게 보면 헌법에 보장된 법관의 독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월권'을 처벌하지 못한다는 앞선 재판부 판단에 대한 비판에 대한 반론을 내놓기도 했다.
"수많은 검사 투입·300쪽 공소장" 이례적 언급
이례적으로 언급한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발언은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재판부는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중대한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들이 투입돼 수사가 이뤄지고 300쪽 넘는 분량의 공소사실로 정리되는 동안 이미 대부분의 실체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범죄가 되지 않고 인정된 것도 피고인 단독 범행"이라고 덧붙였다.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대대적으로 이뤄진 의혹 제기와 검찰수사에 문제가 더 컸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는 임 전 차장에게 가벼운 처벌을 내리는 근거로 참작됐다. 재판부는 "수사 초기부터 '사법농단' 핵심으로 지목돼 대내외적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됐고 긴 시간 유죄로 판명된 범죄보다 몇 배나 더 많았던 범행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만 했다"고 피고인을 감쌌다.
임 전 차장은 선고 내내 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선고 후 쏟아지는 취재진 질문에는 대답 없이 법원을 떠났다. 이로써 '사법농단' 연루 전현직 법관 14명 중 3명에 대한 유죄 판단이 내려진 채 1심 재판이 모두 마무리됐다. 유죄가 선고된 것은 임 전 차장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뿐이다. 그중 임 전 차장이 최고위급 인사다. 이 전 실장과 이 전 상임위원은 2심에서도 유죄를 받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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