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돈 키운 김정은·예측불허 트럼프 … 더 위험해진 '브로맨스'
핵·미사일 역량 더 키운 北
비핵 아닌 동결·군축 외칠듯
美, 평양에 줄 큰 선물 없지만
한국 패싱한 채 협상할 수도
정부, 美와 정책조율 나서고
北과도 대화채널 열어둬야
일각 "韓 핵능력 강화 기회로"
◆ 트럼프 컨틴전시 플랜 ◆
"트럼프는 평양에 너무 많이 내주려고 했다. 다시 그것을 시도할 수 있다."
지난달 31일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다시 북한과 핵협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위험한 브로맨스'를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매일경제가 5일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와 전문가를 상대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점검해본 결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중단됐던 미·북 간 대화가 재개될 공산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2018·2019년처럼 정상회담을 통한 '톱다운' 방식의 담판이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다소 엇갈렸다.
북한이 대화가 끊겼던 시기에 핵·미사일 역량을 늘리며 판돈을 더 키웠다는 점에서 과거 접근법은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며 외교적 공간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 '정치 쇼' 차원의 3차 미·북정상회담 개최로 '나쁜 합의'를 도출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유대감을 과대평가하고 북한이 충분한 '행동'을 실행하기 전에 대북 제재를 풀어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외교통상부 북핵담당 대사를 역임한 이 이사장은 "정부가 미국 신정부의 대북정책을 리드하고 한미 간 대북정책 공조를 강화해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위험한 선택을) 사전에 억제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북 대화 시기에 대미 외교를 이끌었던 조윤제 전 주미대사(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바이든 행정부보다 미·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2018년 3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면담하고 로즈가든에서 미·북 대화 성사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조 전 대사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관심과 김정은과의 친분 등으로 북한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기반으로 세계 질서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비핵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화의 판이 새로 열리더라도 협상이 진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재개하더라도 비핵화보다 핵 동결 혹은 핵 군축을 외치며 '핵 보유국 대 핵 보유국'의 대등한 대화 구도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쓸 개연성이 높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 내내 대화를 거부하며 핵 무력 강화에 매달렸던 점에 주목했다. 홍 위원은 이를 북한이 '포스트 바이든 시대'를 염두에 두고 도박판에서 더 많은 칩을 쌓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북한은 대화 중단 시기를 이용해 △핵물질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신형 탄도·순항미사일 △전술핵탄두 △핵어뢰 △탄도탄 운용 잠수함 등의 생산 확대와 전력화에 매진했다.
홍 위원은 "북한은 미국이 자신을 '핵 보유국'으로 대우하며 서로 핵 위협을 어떻게 감소시킬지를 협정화하고, 미국에 불가침 약속을 받아내는 그림을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으로서는 과거와 같은 '빅딜' 식의 비핵화 개념은 이제 수용하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양측이 적절한 타협에 기반해 핵 군축 프로세스를 가동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최근 미국 주류 언론에서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를 비핵화에서 위협 감소로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추진할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 정부가 미국과 북한 모두를 대상으로 사전 정지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김정은과 대화하고 대북 제재 완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으니 (트럼프 당선 시) 즉각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도 "미국 대외정책에서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입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서 "정부가 북핵 문제에서 미국을 적극적으로 리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확장억제 전략에 회의적 인식을 가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이사장은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한국의 핵 억지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최선의 기회"라며 "전술핵 재배치와 독자 핵 능력 보유에 대해 여타 미국 행정부보다 유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등장이 역설적으로 한국의 핵 억제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인 셈이다.
[박대의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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