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증거만 2만개 제출했는데 “범죄증명 어렵다”...삼성 수사로 타격

이현승 기자 2024. 2. 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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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수사 중단 권고에도 기소 강행
공소장에 적시한 19개 혐의 모두 무죄
제출한 증거 1.9만개, 수사기록 21만페이지
무죄 판단 이유는 “증거 無”
일부 증거는 ‘위법’ 판단도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 증명이 어려워 무죄를 선고한다.”

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사건 재판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법원에 증거만 1만9000개, 수사기록 21만장을 제출했으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은 없었고 논리 싸움에서도 이기지 못했다.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에도 강행한 끝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이 회장 등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사건 선고공판을 열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19개 혐의 모두 무죄였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도 무죄라고 판결했다.

재판부의 판결 이유는 ‘증거가 없다’로 수렴한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에 1년9개월, 재판만 3년5개월을 투입했다. 삼성그룹 전현직 임직원 100명 이상을 소환해 조사했고 회사와 주거지를 13회 압수수색했다.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은 21만페이지, 증거는 1만9000개에 이르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 부당 합병 전제부터 주요 주장 모두 인정 안한 法

법원은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할 때 주장한 주요 전제를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삼성그룹이 제일모직 1주와 삼성물산 3주를 교환하는 합병비율을 만들기 위해 금융시장에서 제일모직 주가는 올라가고 삼성물산은 내려가도록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등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합병 당시 시장에서 제일모직 주식이 고평가됐고 삼성물산 주식이 저평가됐으며 합병비율을 정할 때 삼성물산 주주 이익이 고려되지 않은채 이 회장 이득만 고려돼 합병시점이 선택됐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가가 하락했다거나 하는 주장은 다수 증권사 리포트와 맞지 않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임시주주총회에서 양사 합병안이 통과된 직후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집중 매입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했다는 주장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제일모직은 자본시장법 관련 적법하게 자사주를 매입했다”라며 “통상적인 시세조종성 주문과 달리 종가 형성에 관여하지 않기 위해 (장 마감) 30분 전까지만 주문을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삼성그룹 경영진이 이 회장을 위해 합병을 전단(專斷·혼자 마음대로 결정하고 단행함)적으로 결정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주가 피해를 입었다’는 논리를 폈으나 이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이 증거자료로 제출한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G(거버넌스)’ 문건에 대해서도 법원은 “삼성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한 종합 보고서일뿐”이라고 일축했다.

검찰이 수집한 일부 증거는 위법한 것으로 판단됐다. 재판부는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와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얻은 증거가 위법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수사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 검찰 수심위 ‘수사 중단·불기소’ 권고에도 강행한 檢

이날 법원의 판단은 기소 당시부터 예견됐다는 분석이 있다. 이 회장의 요청에 따라 2020년 6월 열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위원 과반수가 이 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 불기소 의견을 권고했다. 법조계와 학계 등 외부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수심위는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대해 공소 제기여부 등을 논의하는 회의체다. 하지만 현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 주도로 기소를 강행했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이번 법원 판단은 검찰이 이 회장에 대해 무리한 기소를 했음을 보여준다”라며 “검찰이 만든 수심위에서 불기소 권고를 했는데도 이를 무릅쓰고 기소를 했으면 유죄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했는데 그게 없었다고 재판부가 판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무리한 기소는 피고인 입장에선 굉장한 고통”이라며 “이 회장의 경우 3년 넘게 재판을 받으며 기업 경영 활동에 차질이 생겼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도 무리한 부분이 있었던 점이 드러났다”라며 “재판부는 압수수색 절차에 위법이 있었다고 판시했고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 서버, 장충기 전 사장 휴대전화 관련 증거는 능력이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선고 이후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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