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 안지혜는 깊은 우물을 판다[인터뷰]
배우 안지혜는 액션이라는 한 우물을 제대로 파고 있었다. 깊게, 더 깊게 매료된 채.
5일 넷플릭스 영화 ‘황야’에 출연한 안지혜가 스포츠경향 사옥을 찾았다.
‘황야’는 폐허가 된 세상, 오직 힘이 지배하는 무법천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안지혜는 극 중 남산(마동석)과 지완(이준영)이 수나(노정의)를 구하러 가던 중 만난 여군 은호 역으로, 두 사람과 힘을 합쳐 양기수(이희준)를 무찌르고 납치된 아이들을 구해낸다.
거침없는 액션으로 ‘황야’를 빛낸 안지혜는 기계체조 선수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한국체육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체육 선생님을 종착지 삼아 달리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교수님 추천으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라는 공연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 작품이 영화화된다고 해서 단원들 다 같이 오디션을 보러 갔었죠. 연기할 생각이 있냐고 제안을 받았는데 당시엔 없었거든요. 전 학교로 돌아와 교생실습에 나갔어요. 그런데 막상 가르치는 게 적성에 안 맞고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뭘 해야 하나 고민 끝에 그때 그 감독님이 말씀이 떠올라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안지혜는 전작 ‘불어라 검풍아’ ‘늑대사냥’ 등에서 이미 남다른 액션 실력을 검증받았다. 이에 2022년 제1회 아산충무공국제액션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지혜는 “운동을 해서 몸 쓰는 게 낯설지 않았다”면서도 “몸을 잘 쓴다고 액션을 잘하는 건 아니더라.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체조 자세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었다. 액션스쿨에서 하나하나 익혀 나갔다”고 말했다.
‘황야’에 합류한 계기를 묻자 “마동석 선배, 허명행 감독님이라는 두 거장이 함께한다는 기사를 보고 막연히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디션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와서 깜짝 놀랐다. 꿈만 같은 소식이었다”며 “오디션 보고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떨어진 줄 알았는데, 촬영이 한 달 정도 남은 상황에서 캐스팅 소식을 듣게 됐다. 간절히 바라던 순간인 만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황야’ 촬영현장에서 만난 마동석은 그야말로 ‘빛’이었다.
“마동석 선배는 현장에서 후배들을 정말 배려하고 신뢰하고 응원해주세요. 덕분에 집중이 잘 됐고 제 역량보다 더 보여줄 수 있었죠. 옆에서 선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았어요. 촬영에 딱 들어가면 진지하고 완벽하게 캐릭터에 몰입하시거든요. 특히 같은 액션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는 걸 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죠. 액션 스킬도 많이 알려주셔서 이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또한 안지혜는 “허명행 감독에게 누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최고의 액션 감독 타이틀에 힘을 싣고 싶었다.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를 보여주자는 마음이었다. 나를 캐스팅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리얼한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거의 모든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 롱테이크 촬영이 많은 만큼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열과 성을 다한 ‘황야’는 지난달 26일 세상에 나왔다. 공개 첫날 31개국 넷플릭스에서 1위를 차지했고, 곧 영화부문 글로벌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저도 관객 입장으로 재밌게 봤어요. 시원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액션 하나는 진짜 멋지다’ ‘‘존윅’ 같다’는 평이 기억에 남아요. 주변에서는 버거형(박효준) 너무 재밌다는 평이 많고요. (웃음) 제가 연기한 은호는 아무래도 저의 모습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특수부대 소속이면서 이타적인 성향의 소유자죠. 현실적이지만 정의롭고 저돌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만약 영화 같은 폐허의 세상이 온다면 100% 은호처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그 안에는 제 모습이 녹아있죠.”
평소 안지혜는 좋아하는 영화 몇 가지를 반복해 보는 편이라고 했다. ‘귀여운 여인’ ‘노팅힐’ ‘노트북’ 등 사랑스러운 로맨스 영화가 주를 이뤘다. 그간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본인과 비슷한 인물을 묻자 데뷔작 ‘맏이’의 탄실, 영화 ‘불어라 검풍아’의 연희를 꼽았다. 안지혜는 “둘 다 사랑스러운 친구다. 결국엔 성장해서 꿈을 이룬다.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고 설명했다. 스포츠경향이 만난 안지혜의 매력은 거친 액션에 국한되지 않았다.
안지혜는 “기회가 되면 로맨스물도 해보고 싶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 사실 어떤 역할이든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만약에’를 붙여봤다. 만약 차기작으로 액션과 이제껏 해보지 않은 장르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얼 하겠느냐고.
“둘 다 하면 안 돼요? 아···. 그렇다면 멋진 액션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액션도 또 하나의 연기, 대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감정의 몰입이 끝났을 때 희열이 엄청나죠. 직업군에 따라 액션의 디자인 다르고, 또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희열이 있을 것 같아요. 그 희열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나 봐요. (웃음) 기회가 된다면 마동석 선배와 한 번 더 작품 해보고 싶어요. 성장한 모습으로 또 뵀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황야’ 속 안지혜의 모습을 보고 ‘한국의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수식어를 선사했다. 그리고 안지혜는 롤모델로 배우 전도연을 꼽았다. 다양한 얼굴을 넘나들고픈 이유에서다.
“저도 연기를 하며 많이 울기도 울고 웃기도 웃었어요. 관객분들께도 그런 감정을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항상 작품을 끝내고 나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남들은 못 느끼지만 나만 아는 아쉬운 지점이 있죠. 부족했던 점은 다음 작품에서 더 노력해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특히 ‘안지혜’ 하면 대한민국 최고의 액션 배우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더 많이 찾아뵀으면 좋겠어요.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지우 온라인기자 zwoo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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