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또 만나요!” 편지에 답하지 못하는···‘방과후 강사’ 입니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늘 불안한 고용
“학교 쓰레기 대신 버려주는 삶···개선돼야”
길은영씨(40·길샘)는 15년 경력의 방과후 강사다. 지난 5년 동안 경기 의왕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월·화·수요일마다 컴퓨터 과목을 가르쳤다. 학생·학부모들의 수업 만족도는 97.55점. 학부모들은 ‘감사하다’는 문자를 여러 차례 보내 왔다.
길샘에게 이 학교는 스쳐지나는 잠깐의 일자리가 아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8명 남짓한 학생들과도 수업을 진행했다. 길샘은 “통장에 월 24만6000원이 찍혀도 수업을 했다. 돈을 떠나서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길샘은 올해부터 일할 수 없게 됐다. 이 학교에선 2년마다 방과후학교 강사 공개채용을 하는데, 길샘은 2024년 공개채용 면접 전형에서 탈락했다. 근로계약 없이 일하는 ‘특수고용 프리랜서’인 방과후 강사들은 고용을 보장받지 못한다. 한 학교에서 몇 년을 일했든, 얼마나 일을 잘했든 2년마다 진행되는 공개채용을 새로 봐야 한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인 방과후 강사들에게는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은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도 남의 일이다.
올해 길샘은 여느 때보다 더 답답하다. 이번 공채에서 떨어진 이유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어떤 기준으로 평가했는지 궁금해 길샘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기준을 확인했다. 방과후 강사의 평가항목은 전문성, 평가관리, 학생관리, 의사소통·태도 등 4가지였지만, 면접에서는 장점을 포함한 자기소개와 수강 학생의 자격증 취득 성과 두 가지만 물었다.
왜 떨어졌을까. 평소에 지적을 당했다면 추측이라도 했을 텐데 그런 일도 없었다. 교감 선생님은 ‘컴퓨터실을 새로 바꿨는데 불편한 것은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길샘은 자신이 떨어진 이유를 학교에 묻지도 못했다. ‘이 지역에서 일해야 하니까’ 그랬다. 안양에 사는 길샘은 “이의를 제기했다가 소문날 수 있고, 이 지역 다른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냐”며 “수업하러 시흥이나 수원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 꾹 참는 것”이라고 했다.
탈락한 길샘은 다른 학교들에 서류 십수 개를 넣었다. ‘프리랜서’ 길샘은 얼른 새로운 학교의 자리를 구해 다시 학생을 모아야 한다.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다. 길샘은 “올라온 공고들 보니까 다 하루짜리더라”며 “아이 둘 데리고 사는데 하루 일해서 어쩌지 싶다”고 했다.
그 학교들도 합격은 불투명하다. 학교가 정말로 새 사람을 뽑을지, 기존 강사와 계약을 계속할 마음이면서 형식적으로만 공채를 올린 것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길샘은 “알 수 없으니 일단 다 넣어본다”며 “학교에서 내쳐지면 다른 학교를 구하기 너무 어렵다”고 했다.
길샘은 그래도 아이들을 계속 가르치고 싶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재밌고, 컴퓨터 잘 못하는 아이들이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낀다”며 “그래서 이 일을 쭉하는 것”이라고 했다.
길샘과 같은 방과후 강사는 전국에 적어도 8만명이지만, 이들을 보호할 법적 근거는 미흡하다. 현재 강사의 채용과 운영에 대한 법이나 조례는 없으며, 교육부의 초·중등교육과정 총론과 각 시도교육청이 발간하는 ‘방과후학교 운영 길라잡이’에 따라 시행된다. 결국 교육청이나 학교 자율에 따라 운영되는 셈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방과후 강사들은 “금방 소모되는, 힘없는 도구”다. 길샘은 “일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정체성과도 연결된다”면서 “강사들은 학교에서 가장 을이다. 학교에선 종량제 봉투를 가져와서 수업 중 생긴 쓰레기를 담아 가져가라고 한다. 우리 처우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학교를 15년쯤 다녀보니까, 이 학교든 저 학교든 강사들 대하는 건 똑같은 것 같다”고 했다.
길샘이 초상과 실명을 공개하고 언론에 말을 건 이유도 이와 같다. 길샘은 “용기 내서 이야기를 꺼낸다”며 “이제 정말 일자리가 없어질까 걱정되지만, 이런 부분들이 개선되지 않으면 계속 묵인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채연 기자 applau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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